일상사/외면일기

산미구엘과 딸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

타츠루 2021. 6. 28. 19:23

맥주와 장강명


시험 감독을 마치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편한데 학생들은 대부분 점심을 먹지 않고 간다. 시험 기간에 제공되는 식사고 무상급식이다. 하지만 안 먹고 가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갔다. 같이 가는 선생님이 태워줄까 물어봤지만, 자전거 타고 가는 게 더 좋아서 거절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자전거를 타는 게 훨씬 좋다. 이제는 브롬톤 타는 데 익숙해져서 10킬로 정도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 진주 시내는 멀어봐야 모두 30킬로 안이다. 아니 대부분은 20킬로 안 일 것 같다.

일을 하는데 하늘이 꾸물꾸물 급히 색을 바꾼다. 무엇이든 바싹 구울 것 같은 볕이었는데, 금방 비를 뿌릴 듯 찡그린다. 레인 재킷은 준비했지만, 비가 안 오는 개 더 편하다. 가방에 씌울 방수 커버를 두고 왔기 때문이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는데, 아내의 전화. 딸 하원시키면서 나를 봤단다. 아파트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딸을 기다린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를 보고 저렇게 반갑게 손 흔들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아, 학교에는 제법 있구나. 그래도 딸만큼 절절하게 온 몸과 마음으로 나에게 손 흔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딸은 자주 나에게 “아빠는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묻는다. 예전에는 “당연히 딸을 제일 좋아하지.” 답해줬는데, 요즘에는 아들이 기분 상할까봐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딸은 엄마랑 놀이터로 간다. 딸의 유치원 가방을 들고 집으로 혼자 올라온다. 딸이 놀이터에서 집으로 오기 전까지가 짧은 나만의 시간이다. 우선 비 내리기 전에 집에 오려고, 맞바람을 이겨내며 페달링 하느라 다 젖은 옷을 세제물에 담궈둔다.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서 생긴 일과 중 하나다. 퇴근하면 바로 그날 입은 자출 복장은 손세탁한다. 몇 번 헹구고 탈수하면 다음 날이도 입을 정도로 빠르게 마른다. 그렇다고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은 아니다. 파타고니아 베기스 팬츠를 다른 색으로 3벌 가지고 있다. 웃옷은 역시나 잘 마르는 소재로 3개. 둘은 파타고니아, 하나는 오들로. 일단 새제물에 모두 담그고 샤워를 하러 간다.

얼마전까지도 따뜻한 물로 샤워한 것 같은데, 차가운 물로만 샤워를 해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느긋하게 샤워를 한다. 밖으로 나와서 빨래를 한번 더 헹구고 세탁기에 집어 넣고 탈수한다.

그리고 덜 읽은 장강명 작가의 책을 집어 앉았다.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맥주를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으니 맥주가 더 당긴다. 냉장고 야채칸기 비좁아졌는지 아내는 맥주를 야채칸에서 꺼내서 냉장고 안 잘 보이는 위치에 뒀다. 나흘 전 편도에 궤양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약은 다 먹었다. 궤양 때문에 목 안이 긁힌 것처럼 아팠는데, 오늘은 괜찮다.

따각.
맥주를 결국 한캔 뜯었다. 궤양이 맥주를 알아보지는 않겠지. 콜라나 탄산수나 맥주나 목의 입장에서는 별 차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 맥주를 마신다. 딸이 오기 전에 다 마셔야 한다. 세탁기는 이미 탈수를 끝내고 조용하다. 빨래를 널까 하다가 맥주 마실 시간을 쪼개어 빨래를 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빨래는 딸이 와도 널 수 있지만, 딸이 오면 맥주는 힘들다. 그렇게 맥주를 와구와구 마셨다. 장강명의 책이 눈에 더 잘어온다. 책 속에 온통 산미구엘 맥주 이야기라 다음에는 산미구엘 맥주를 좀 사둬야 겠다.

띠리리.
딸이 결국 돌아왔다.
나는 얼른 맥주캔을 들고 읽어나 캔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분리수거 포대에 넣고 딸을 맞이하러 간다.

“딸, 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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