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모임

먼북소리 4월 : 죽음의 수용소에서

타츠루 2022. 4. 15. 22:13

죽음의 수용소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선택하는 방법

피곤한 한 주를 마무리하기에 독서 모임만큼 좋은 게 없다. 맥주 두 캔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사들고 집에 들어와서야 나는 오늘이 #먼북소리 모임 하는 날이란 걸 생각했다. 오늘의 주인공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잘 읽고 있었으나,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독서 모임 준비. 지난번 모임 이후 한달이 되지 않았지만, 서로 근황을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달이 지났지만, 각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한 달씩 더 해가도, 너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안심이 되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마지막에 한 분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상처받는 시기에, 되려 이 책을 읽기에는 적절한 시기였다. 다른 전쟁보다 더 잔인한 전쟁이라는 게 있을까. 전쟁은 다 다른 방식으로 잔인하다. 같은 점이 있다면, 사람이 죽어간다는 점뿐이다. 죽음의 수용소를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수용소에서의 고난과 비인간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로지 이 책은 희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인간이 품을 수 있는 희망과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희망.

저자 빅터 프랭클은 이 책을 익명으로 내려고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이름을 썼다고 했다. 익명으로 썼다면, 진위를 의심받지 않았을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이란 치밀하게 묘사해도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리라.

죽음의 수용소에서

오늘 우리는 책에 그은 밑줄보다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이 책에는 밑줄을 그을 수가 없었다. 아주 뛰어나거나 아름다운 문장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하나의 문장으로 떼어내어 읽을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주목 받은 문장은 p108에 있던 인간의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부분이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우리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나를 구성하는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최후의 순간에도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다. 그런 가능성은 우리가 이전의 를 넘어서는 도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미처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야 혹은 도약을 보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선택할 때에만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늘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책은 삶이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생각하라고 한다. 내 삶은 나에게 최선을 기대할 것 같다. 나는 그 기대에 기꺼이 응하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건 삶은 나에게 내 최선을 기대할 것 같다. 어떤 순간에서도 주저앉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내 삶과 나는 보조를 맞추어 나의 삶을 구축해 간다.

내일을 살기 위해서는 오늘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오늘 잠들고 내일 일어나는 하루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빵 대신 담배를 피우며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수용소 수감자가 있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사망자가 늘어난다는 저자의 서술이 있다. 유통기한 지난 희망은 사람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유통기한 없는 희망이 필요하다.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는지 이야기했다. 아이의 눈을 보며, 더 나은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풍성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애쓸 수가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고도 내 인생 전체를 반성하고, 내 삶의 태도에 숙고하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사랑(자기애)인 것처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사랑이다. 내 등 뒤에서 천사의 날개처럼 나를 밀어주는 의지 그 자체인 사람, 느긋하게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부모, 그 덕분에 우리는 살아왔다. 인간종이 아직 멸망하지 않은 것은 우리 DNA에 사랑이 강력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내 공감의 대상을 넓혀 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으로 대화는 이어졌다. 깨달음은 크고 넓은데, 행동의 방식을 찾자면 역시나 막연하다. 질문이 깊어지면 좋으니, 다른 책을 떠올린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헌법의 풍경. 다음에는 또 다른 질문으로 비슷한 질문을 관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임의 회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모임은 안전한 공간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편안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귀인이 되고 있다. 퇴근 길에 사 온 맥주를 연거푸 마시고 영화나 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독서모임을 하고 나니, 내 몸은 가볍고 마음은 상쾌하다. 내 변화를 바라보고, 옳은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사랑하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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