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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모임

9월 먼북소리 독서모임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이 책을 누구에게, 왜 추천하고 싶습니까? (‘재미있다’라는 말 빼기)

  • 모든 사람에게, 병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 다니던 회사 식구들, 다양한 구성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
  • 오빠와 올케, 남편, ‘인식’이 문제. 나의 변화에 대한 재빠른 인식, 그게 혼자서는 안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인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 남편, 친정아빠, 혼자 환자를 데리고 있는 아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해서. 다양한 병증 사례는 그저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질병에 대해 이해하면, 질병을 갖거나 가지지 않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모임 먼북소리

9월의 먼북소리 모임이다. 오랜만에 여러 사람(나를 포함해서 5명)이 모였다. 온라인이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모여 얼굴 보고 이야기하니 좋았다. 오늘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이다.

먼북소리 독서모임이 읽어나가는 책의 주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탈자본주의적 삶’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어떻게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조금 덜 자본주의적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을 읽으려고 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뇌와 관련하여, 혹은 정신적으로 질병을 가진 상태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다울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다. ‘인간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7시부터 시작한 우리 모임은 오늘 9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나는 오늘 5시 30분까지 수업이 있었고, 학생들과 ‘추석인사’를 하느라, 연휴로 학교에 오지 않을테니 필요한 짐을 챙기느라 집으로 출발이 좀 늦었다. 추석 때 아이들과 놀려고 진주문고에 가서 미리 주문해둔 책도 찾아오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저녁을 허겁지겁 먹고 그 잠시 동안 아이와 이야기도 하고 Zoom을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씻지도 못하고. 그래도 즐겁고 재미가 있었다. 자주 독서모임을 하고 나면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놓을 수만은 없고, 독서모임에서는 담아놓을 필요가 없다.

기억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면, 기억을 잃은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가 몸에 대한 ‘고유감각’을 잃으면, 이는 어떻게 자아에 영향을 미치는가? 구체성은 무엇이고, 과연 추상성을 잃고 구체성만 남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다운가? 에 대해 같이 고민했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눌 수 없는 주제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단어들에 의존하고, 우리가 겪은 경험에 기대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한 분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님을 생각했고, 또 한 분은 상처를 준 가족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아픈 사람에 대해, 나를 상처주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올리버 색스가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서사를 구성하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환부가 달린 몸으로서의 환자가 아니라, 병에 대항하며 자신의 삶을 꾸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병력’이라는 단어로만은 도저히 한 사람의 아픔을 담아낼 수 없는 게 분명하다.

이런 생각은 우리 일상에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겉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끼거나 ‘보통의’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행하는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사람을 ‘모자란’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결핍되어 ‘덜한 인간’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를 상처 주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 어떤 변화가 필요하지 않는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는 이때의 대화가 가장 좋았다.

내게 상처주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우선 피하는 게 좋겠다.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가지면 좀 나아질 때가 있다. 되도록 판단하지 않으려 애쓰며 거리를 두겠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안보는 게 좋다. 등등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상처 줬고 상처 주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문제가 어렵고 복잡해진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의 서사를 알면, 어쩌면 그 사람을 좀 더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해는 용서와 다를 바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존재이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그렇게 또 용서하는 게 못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고민의 지점이 여기이고, 삶을 힘들게 하고 잘못하면 내 삶을 좀 먹는 지점도 여기다. 나는 이 부분에 한참 멈춰 서서 생각했고, 이 부분이 유익했다.

누군가의 서사, 누군가의 사연에 대해 알게 되면 더 이해하게 되거나 쉽게 용서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서사에 관심기울이는 노력을 내가 쏟아야 한다는 데 나는 분할 것 같기도 하다. 누구도 내게 용서를 권유하지 않더라도 마음 약해지는 내가 싫어질지도 모른다. 늘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부터 지키는 일이다.

답을 내지 않은 이야기지만, 더 날카로운 질문은 성급한 답보다 좋다. 여러개의 질문을 안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소재에 대해 생각하고서도 우리는 “참으로 이 모임이 소중해서 찾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심연으로 끓어들이는 사람과 사건과 갈등으로부터 우리를 부양시키는 건,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 그리고 좋은 책이다.

맨 위에 옮겨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를 보라. 이 책은 정확히 우리에게 “인간은 어째서 인간인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오늘의 모임은 특히 더 좋았다.

그나저나 다음 책은 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