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은 여름 음식 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어졌다. 왜 그럴까. 집 주변을 산책하는 데 자꾸 보이던 서가냉면 이라는 간판 때문이리라.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분 탓인가 노곤함이 몰려왔다. 뭔가 [[쏘울푸드]]가 필요한 것 같은 느낌! 무엇을 쏘울푸드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만 먹고도 살 수 있는 그런 음식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 더 넣어줘야 한다. [[초밥]]
아내와 아들을 집에 내려다 주고, 나는 서가냉면을 향해서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가서 먹게될 차가운 냉면을 상상하며 내 몸을 달래가며 걸었다. 문이 닫혀 있다. 아직도 설연휴를 끝내지 않았다.
진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냉면 중 하나인 얼쑤냉면 을 향해 차를 몰아간다. 혼자 가지만 만두도 주문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물 냉면이요.”
라고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린다.
가지런히 젓가락부터 얹어놓고 기다린다.
두둥.
냉면 도착.
겨울이라고 봐주기 없다. 얼음 동동 육수다. 고명으로 유부, 배, 오이, 육전. 와사비 식초를 조금 넣고 섞는다. 면에 얼음이 엉킨다. 가위가 나오지만 면을 자르지 않는다. 어차피 냉면 면발은 그렇게 질기지도 않다. 면을 자르면 씹어먹는 식감이 줄어든다는 게 내 지론이다. 절대 냉면을 자르지 않는다.
이 집은 메밀로 냉면면을 뽑는데, 소바 먹을 때의 그 약간 쿱쿱향이 난다. 전혀 기분 나쁜 향이 아니니 향이라고 해야 한다. 여름에 먹을 때는 유부 맛이 도드라지지 않았는데, 오늘 먹는데, 유부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약간 기름진 듯한 유부와 입 안을 얼리는 면과 너무 잘 어우러진다. 육수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여름이었으면 벌컥벌컥 들이켰겠지만, 정신차리자 지금은 겨울이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세 젓가락 후루룩 먹고 나니 이제 속에서 신호가 온다. 뱃 속부터 안에서 밖으로 몸이 얼어가는 것 같다. 마치 북극곰 수영대회에 참가한 것처럼 내 몸은 차가운 육수에 젖어든다. 이럴 줄 알고 두꺼운 외투를 벗지는 않았다. 겨울에 호기롭게 냉면을 시켜 먹다가 외투를 입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벗지 않았다. 이렇게 차가울 줄 알았어.
혹자는 너무 차가운 냉면은 제대로 맛이 나지 않는다 라고 한다. 나에게는 차가운 맛도 맛이다. 겨울만큼 차가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계절이 어디있나. 여름에 느끼는 차가움은 여름에 희석된 차가움이다. 겨울에 느끼는 차가움은 겨울 때문에 가속된 차가움이다. 속에서는 좀 천천히 먹어라, 인간 이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쉴 수 없다. 면이 불어서는 안된다. 빠르게 한 젓가락 집어 먹는다. 너무 차가우면 김치를 먹는다. 시원한 김치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만두를 시킬 걸 그랬군..)
감칠 나는 육수는 맛있는 초장에 적당히 물과 식초를 탄 것 같다. 감질나는 물회맛에 가깝다. 마시기도 하고 떠먹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맛있는 음식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음식을 먹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음식이 아닐까. 찾아냈다. 당신의 소울푸드(아님 comfort food)를 찾는 방법을. 작정하고 찾아가 긴 시간 기다려서 먹는 음식이 아니고, 끼니로 먹는 음식인데, 그 음식을 먹는 순간, 그 음식을 먹는 순간에만 온전히 집중하는가? 그렇다면 그 음식은 당신의 소울푸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단, 어떤 음식이든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 먹는 데만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미 쏘울이 살 찐 사람. 당신에게는 모든 음식이 쏘울푸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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