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련/수업이야기

15년차 교사가 ‘어디선가 임용 2차를 준비하는 예비교사에게’

타츠루 2021. 1. 5. 22:54




대학을 졸업한지도 긴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어찌 가는지 세어보지 않아서 그런가. 이제 나도 제법(?) 경력이 쌓였다. 해온 만큼 더 하고 나면 퇴직하려나. 정년까지 만족스러운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으려나?

임용시험 시즌이다. 1차 시험 발표는 났고, 이제 곧 2차 시험이다. 내가 사범대를 다닐 때만 해도 국영수 과목은 다른 과목에 비해 교사 TO가 많은 편이었다. 개별화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에 대한 요구는 있지만, 결국 정책 결정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고로 교사 수급은 다시 줄어들고 있다. 학생수가 줄어드니 그에 따라 줄여나가는 것. 어떤 이유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는지 모르지만, 많은 예비교사들이 지금 시험을 준비하면서 고민하며 공부하고 있겠지.

내가 영리하지 않고 늦된 사람이라 그런지, 사범대학에서 배우는 것들을 내가 왜 배우는지, 이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 대학교에 다닐 때는 충분히 생각해 보지 못했다. 배우는 과목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 과목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고민을 충분히 했으면 좋았겠다 생각한다. 교수님들도 그 부분을 더 강조해도 좋았을 것 같고, 실제 교사들에게서 이야기 듣는 시간이 더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지금에야 생각한다. 누군가 어디선가 이 글을 읽을 예비교사에게 이 글을 띄운다. 그리고 2차 시험인 수업안 작성, 수업 실연, 면접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어떤 힌트라도 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필요한 부분, 도움이 될 부분만 취하시길.

수업안 작성에 대해서
수업은 큰 틀에서는 해당 학기에 해당 과목에서 요구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작은 단계들이다. 큰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수업을 잘 짤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단, 지금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이란 결국 수능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수능 기출이든 교과서든 우리는 하나의 단위 수업에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니 수업에는 반드시 수업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모든 수업은 수업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다. 수능 문제 풀이를 하다 보면 가끔 그 수업 목표를 잊고는 하는데, 나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생각하면서 ‘수업활동’을 구상한다. 그리고 학습지에서도 수업 목표를 생각해서 준비한다.

시험에서의 수업안도 그렇다. 수업 목표가 있다면 모든 수업 내용은 수업목표를 성취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수업 시연을 위해 수업안을 짜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분이 더 점수를 받느냐? 이건 너무 고심할 필요가 없다. 수업 시연에 대한 루브릭이 수험생에게 공개되지 않는 이상, 수험생은 어떤 수업안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 수업 활동을 쓰면서는 두루뭉술하게 쓰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활동, 손에 잡힐 듯한 세부사항도 생각해서 쓰면 좋겠다. 왜? 내가 실제 수업안을 작성하면서 그렇게 할 테니까.

본 활동에 앞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수업 자료를 소개하는 단계를 대개 introduction, motivation 단계라 부른다. 이런 단계에서 쉽게 ‘영상을 보여준다’ 식으로 쓰기 쉽다. 하지만, 학생들은 ‘텅 빈 존재’가 아니다. 영상을 보면서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는 거리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그 영상을 왜 보는지, 그 영상이 수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학생들이 예상할 수 있다. 수업 시연을 위해 수업안을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영상의 내용’까지 상상해 보자. 그리고 학생들에게 ‘그 영상을 봐야 하는 이유’, ‘그 영상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을 제시하자. 그래야 학생들은 그 영상에 집중할 수 있다.

수업 시연시 감독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내 목소리와 내 표정과 몸짓, 그리고 판서다. 판서를 구조한다는 게 반드시 ‘지식을 구조화’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뤄야 할 언어 파트에서 ‘가정법’이 나온다고, 가정법 전체를 판서하며 정리할 수 없다. 판서는 일단 ‘무엇’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고, 그게 잘 드러나도록 구성하면 된다. 나는 실제 수업 시 칠판은 세 부분으로 나눈다. 제일 좌측은 단어나 표현, 중앙은 중요한 문장이나 학생들의 답, 내용 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표현, 제일 우측은 수업 내용과 관련하여 내가 해주는 이야기(일종의 배경지식)의 중심어를 쓴다. 쓰는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일단 판서를 할 때, 칠판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



면접을 어떻게 준비할까
이미 면접 질문 중 기출된 것들을 다룬 책이 있을 것이다. 분명 그걸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수준’이나 ‘깊이’의 질문이 나오는지 알면, 그와 유사한 문제도 만들어서 연습해볼 수 있다. 모범답안으로 생각되는 답안을 작성하고 달달 외울 수도 있다. 그것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외우는 데만 마음을 쏟지 말자. 면접은 교사로서의 자질, 그러니까 그간 교사가 되고자 고민하고 공부하고 생각해온 것들, 에 대해 묻는 자리다. 내가 청소년기 학생들의 일반적인 특징에서부터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잘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고민했다면 나는 이미 준비가 되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저런 생각들까지 깊이 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이해한다. 나도 저런 고민은 대학교 다닐 때는 별로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1차 시험에 합격했으니 ‘스스로’ 고민해볼 좋은 기회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 결정하고 실행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 결정이라는 것이 학생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담임인데, A라는 학생이 찾아와서 조퇴를 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 학생 학부모님에게 전화하고 확인만 하고 보내준다. 곧이어 B학생이 찾아와서 조퇴하겠다고 한다. 나는 “안돼”라고 말하고 그 학생을 돌려보낸다. A, B 학생에 대한 내 결정이 다른 이유는 그 두 학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들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A학생은 성적도 좋고 평소 생활도 올바르기 때문에 바로 조퇴를 시켜준다? B학생은 평소 지각도 잦고 수업태도도 태만해서 조퇴를 시키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럼 이런 결정들은 어떻게 하고, 그 학생들과의 대화는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하나?

1. 학생들을 어떤 존재로 보나요?

내가 가장 오래 고민했던 주제다. 그리고 아직도 고민을 하고 있다.

2.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여 어떤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가?

문장은 다르지만, 결국 1번과 2번 질문은 동떨어진 질문이 아니다. 자잘한 질문에 대한 좋은 안내는 더 크고 깊은 질문에 대한 고민으로 실마리를 잡아갈 수 있다.

3. 라면에 땡초를 넣어야 될까 안 될까?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4. 누가 이 라면을 먹을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이미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교육의 시작은 ‘믿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난다’고 믿어야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생각하고 이 생각에 이르렀을 때, 많고 많은 일상적인 갈등에 대응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학생은 변화 가능성을 지녔다.’라고 믿는다. 학생을 믿기 때문에, 학생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믿음을 보여주고 설명해줌으로써, 학생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려 애쓴다. 학생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도 판단의 대상은 오로지 학생의 ‘행동’에 한정된다. 학생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면, 학생은 자기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반드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 나만이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고, 사람의 변화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학생의 변화를 믿기는 하되, 결국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부처도 예수도 아니라,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더라도, 학생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접어서는 안 된다.

- 한 학생이 지각이 잦고, 지도하는 담임교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수업에 들어가서 교과 선생님들과의 갈등도 잦다. 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학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학생이 하루 아침에 바뀌도록 만드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까? 아니. 없다. 그런 방법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이미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저 질문은 ‘정답’을 내놓으라는 말이라기보다, ‘고민의 과정을 이야기해보라.’ ‘실천이 의지를 보여달라.’에 가깝다.

저 학생은 늦기는 하되 학교에 오고 있다. 감사할 일이다. 먼저 ‘늦기는 하더라도 1교시에는 어쨌든 와줘서 고맙다야’ 라고 대화를 한번 시도해 보겠다.

(담임인) 내 이야기도 잘 안 듣는다면, 다른 교과선생님과의 갈등은 어쩌면 뻔한 결과다. 그간 지각이 잦아서 선생님들에게 ‘혼난’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닌지 알아보겠다. 아침에 지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겠다. 꾸중하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 잔뜩 찡그리고 등교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알아보겠다. 부모님에게도 전화를 해볼 것이고, 평소 그 학생과 자주 어울리는 학생과도 이야기해볼 것이다. 학생에게는 어떤 행동의 변화를 바라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학생의 ‘지각’이라는 행동만 고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학교는 편안한 공간이고,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가 되는 사람이며,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이라는 점을 학생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국 그 학생은 나아지지 않을까. ‘또 지각이야’ 라며 나도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

급히 마무리
시험을 준비하려면 당장 기출문제를 보고 답을 외울 것이다. 틈틈이 내가 겪었던, 내가 관찰했던 학교에서의 갈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당장의 해결책을 생각하려 애쓰기 보다, 내가 정말 학생의 변화를 믿는지, 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내가 학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보자.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질문과 고민으로 쌓아가는 게 ‘나의 교직관’이 되지 않을까.

덧.
개요도 퇴도고 없는 글이라 거칩니다.
나중에 수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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