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청소
책 제목을 보라, 읽지 않더라도 제목 때문에 책을 한번 더 보게 된다. 나는 몇 몇 미디어에서 책을 접했고 결국 사두기는 했다. 그럼에도 또 몇 달간 읽지 못하고 두었다. 스스로를 중년 남성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건강에 염려하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내가 어릴 적보다 훨씬 죽음에 가까워졌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도리어 뒤로 물러서서 겁을 먹게 될 때가 있다. 아예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은 소재라는 생각,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 소재라는 생각.
책을 펼치고 저자의 문장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청소하는 노동자로부터 시작한다기 보다 시인을 꿈꾼 사람에서 시작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하다가 그는 어쩌다가 특수청소라는 분류하기도 어려운 일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잔인하거나 잔혹한 죽음의 장면을 엿보려 이 책을 펼친 사람이 있다면 저자는 한 문장 한 문장으로, 화면을 정리한다. CSI 과학수사대의 혈흔 채취 장면 같은 묘사를 기대하고 들어왔다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게 된다.
사람도 죽으면 썩는다. 그리고 홀로 죽은 주검은 남몰래 썩는다. 아무도 모르게 치워달라는 의뢰를 받거나, 검찰이나 경찰로부터 사건 현장 처리를 의뢰받아 저자는 때때로 방독면을 쓰고, 반드시 보호장구를 하고 현장으로 간다. 현장의 냄새와 시선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이게 글이라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상상하기는 하나 사진처럼 머리에 떠올릴 수는 없어서 나는 자못 평안한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끌고 가는 곳으로 끌려 간다.
홀로 죽어간 사람, 마지막을 선택하거나 선택받은 사람의 집은 대개 전기가 이미 끊겨 있고, 가스도 끊겨 있다. 그들이 마지막 선택을 위해 고른 방법은 자기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도구들이다. 삶에서 받은 고통이 있고 그걸 끊어낼 결심을 했는데도, 삶에서 익숙한 것들에 도움을 받는다.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죽음이고, 그저 흔적없이 치워졌으면 하는 죽음인데, 그 앞에선 저자는 죄인된 마음, 친구된 마음, 존중하는 마음으로 임한다. 강도높은 노동에 손가락 마디가 아리면서도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의에 대해서 생각한다. 주로 남이 물어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죽은 사람의 자리를 돌보는 저자에게 나는 감사한 마음이다.
일찍이 존 던은 '우리는 섬이 아니다'라고 했다. 저 멀리서 들리는 조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 지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바로 '나'를 위해 울리는 것. 나는 한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죽음과 주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나는 약간만큼은 망자에 대해 애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사하게도 타인에 거의 무관심한 나의 일상을 속되받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의 죽음 직접 목격하거나 애도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누군가가 내 주위에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 점에 안도하며, 오로지 귀를 쫑긋 세우고, 말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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