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독서모임
진주 망경동. 우리는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2주 동안의 시간이 있었지만 정말 다양한 재미거리를 제쳐두고 책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에밀을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재미있는 책에. 눈을 빼앗기곤 했다. 어쨌든 책은 읽어냈고 우리는 자리에 모였다.
진행
01.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 : 에밀의 2장과 3장은 다섯살부터 열두살까지를 다루고 있다. 오늘 책모임의 시작은 자신의 소년기 혹은 소녀기를 생각하며 강렬한 기억ㄱ에 대해 말해보았다. 1장의 경우,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았다.
* 1장에서는 저자인 루소가 어떤 전제를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어떤 논의를 해나갈 것인지 잘 살펴봐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투입했다. 2, 3장은 150페이지 정도라 소제목마다 멈추어서 이야기를 논의하기가 어려워서 다른 방법을 생각.
02. 2장과 3장을 논의할 때 초점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루소는 ‘행복하고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제대로된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다. 나중에 자기의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고아원에 아이들을 보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루소는 ‘가상의 에밀’을 완벽하게 교육해내는 과정에 대해서 쓸 수 있었을까. 루소도 밝히는 바 ‘경험한 것과 관찰한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고 했다. 나는 그 관찰의 중요한 대상이 ‘루소’ 자신 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자신에게 부족했던 교육, 자신에게는 너무나 모자랐던 주위의 어른,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고통이나 성장에 대한 욕구. 이러한 것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걸 해결할 수 있을만한 논리를 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루소’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의 일생을 관찰하였다면 가장 관찰하기 쉬운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을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03. 2번에서와 같은 시각을 우선 던지고, 2장과 3장은 소제목을 읽어가며 빠르게 진행했다. 5명 중, 1명은 책을 전혀 읽어오지 않았고 책도 없었다. 그래서 4명이 돌아가면서 진행했다. 4명 중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은 나 혼자. 3장을 읽고 온 분, 3장까지 거의 다 읽은 분. 이렇게 구성되었다. 4명 중 한 명씩 소제목 하나를 붙잡고 밑줄 긋거나 생각한 것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2장을 끝냈을 때 이미 한 시간 넘는 시간을 써버려서 3장에서는 더 서둘렀다.
04. 소제목으로 이야기를 이끌면서 위 그림에 있는 세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진행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당장 답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루소가 강조하는 ‘자연과 경험’, ‘능력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결국 나에 대해서나, 나와 내 자식에 대해서 같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깨달은 바
루소의 이야기 중 일부는 현대의 과학이 입증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관찰과 사변 만으로 ‘에밀’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대단하다. 그의 삶과 그의 시대에 대해서 좀 더 안다면, ‘에밀’이라는 작품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결국 루소의 다른 저작도 찾아 읽어야 할 것이고, 루소의 생애에 대해 다룬 책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다양한 실증을 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상태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에 대한 답까지 루소에게 물을 수는 없겠지만, 결국 아이를 교육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려면 결국 스승되고자 하는 자, 혹은 부모는 더 많은 것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에 대해 더 탐구해야 한다. 특히 2장과 3장에서는 아이에게 말로서 ‘관념’을 가르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이의 이성은 오로지 신체의 발달이 선행할 때에만 뒤이어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신체적 발달은 자연과의 관계, 사물에 대한 경험으로만 가능하다. 아이가 묻기 전에 답하지 말고, 옳고 그른 기준을 가르쳐 그에 따라 행동하고 통제하도록 하지 말라고 한다.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아이는 몰두할 수 있으니 그런 조건을 만들어 주고 필요한 만큼만 조력하라고 한다. 루소의 말이 모두 맞다고 해도, 그의 말을 따라 실천하기는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우선 내가 ‘아이를 이끌어나갈 교사이자 부모’로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지부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분명 루소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내 자식의 교사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할 게 분명하다.
아이의 현재를 저당잡혀 미래를 욕망하지 말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이가 아이로서 온전히 행복한 순간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혹시나 아이가 아이로 행복하게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등지더라도, 그간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죽음도 억울하지 않다고. 우리는 마치 우리에게 적어도 ‘평균기대수명’ 만큼의 삶은 보장된 것처럼 산다. 오늘의 고통은 미래의 거름이라 스스로를 또는 타인을 설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고통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책에서 루소는 ‘죽음은 한 번 경험하는 것’이라 한다.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며 노심초사 하지 말라고 들리기도 하고,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말로도 들린다.
나는 그러고 있는가?
덧. 자연의 가르침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추천한다. 루소까지 추천했으니,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