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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아들과의 새벽 남강 라면 라이딩

꽤 오래 생각만 해오다가 이제 날씨도 풀리고 해서 아들과 실행해 보기로 했다. 자전거 타고 가서 아침 먹고 돌아오기.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어려우니, 삼각김밥+라면으로 해보기로 했다. 어제 미리 먹을 것을 사두고, 일단 아들에게는 일찍 잠들라고 했다. 요즘 일출은 대개 6시 30분이다. 더 일찍 나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춥기도 하고 충분히 자지 못하면 아들이 힘들까봐 6시 30분에 아들을 깨웠다.

안개와 일출

아들에게는 따뜻하게 입으라고는 했지만, '내복 바지도 입어야 하냐?'는 아들에게 내복까지는 입을 것 없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늘 자전거로 출근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던 감각에 익숙해져서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가만히 앉아서 라면을 먹으려면 아직도 추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아들과 챙겨 나가면서 충분히 준비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래도 따뜻한 집을 나서면서도 별 문제가 없다. 새벽 남강에 가득 깔린 안개를 보며 아들은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마녀의 동네 같다고 한다. 모든 창작은 결국 어느 정도 자연을 모티프로 할 수 밖에 없다.

조금 춥게 입은 아들

더 두꺼운 파카를 입혔어야 했는데.. 그래도 아들은 너무 춥다고 하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다 큰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안개 속으로

시야가 100미터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 아들에게 사진 찍을테니 먼저 가보라고 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아들은 조금씩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안개 속으로

안개 때문에 아들이 뿌옇게 보이자 나는 왜 그런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청승맞게 안개 속으로 조금 뿌옇게 보이는 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아들을 생각한다. 지금을 더 누리자. 그래서 오늘 같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들 모습이 희미해지자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사진은 그만 찍고 따라 나선다.

라면과 커피

30분을 달려서 10킬로 지점. 너른 편상에 짐을 풀고, 준비해온 따뜻한 물로 아들 컵라면부터 물을 채운다. 내 물도 끓여서 라면을 후루룩 금세 먹어낸다. 아들이 추운 눈치라, 버너에 주전자를 얹고 자꾸 물을 끓인다. 삼각김밥에 육포까지 조금 먹고 아들에게 움직이라고 했다. 잔잔한 강에 바위를 던지며 아들은 새벽을 깨운다. 첨벙 첨벙. 누가 들으면 시체라도 던지나 싶을 정도로 어디서 큰 돌만 주워서 던진다. 그리고는 또 쓸만한 나무를 가지고 오며 너무 좋단다. 아들은 숲으로 갈 때마다 마음에 드는 나무가지를 발견했고, 가끔 차에 몰래 실어 놓기도 했고, 지금도 아파트 문 앞에 가지를 하나 뒀다.

커피샷

집에 스타벅스 원두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거라도 가지고 나갔다. 커피 맛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구색은 다 갖춰본다. 새들도 잠에서 깨지 않은건지, 초봄에 새들은 잘 울지 않는 건지, 조용하다. 가끔 지나가는 차 때문에 고요가 깨지지만, 다음에는 좀 더 잘 준비해서 다시 오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텐트를 가지고 오거나, 가스히터를 가지고 오거나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오는 길에는 아들과 나란히 자전거를 달렸다.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았지만, 이야기는 일부러 별로 하지 않았다. 잔소리를 하거나, 내 말을 하려고 부른 날이 아니다. 그저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중요하다.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걸 말로만 해서는 부족하니, 시간을 나누어서 그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다음 주에도 나서보자, 사랑하는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