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얼굴을 허하라. (영광도서 방문기)

2016.08.07 22:27





중학교 때인 것 같다. 친구들과 자주 서면까지 버스를 타고 나갔다. 뭔가 대단한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시원한 동보서적에 갔다가 태화백화점에 갔다가 시원한 영광도서에 갔다. 뭘 사먹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서점에 들렀다. 시내 한가운데 큰 서점이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랜만에 부산본가에 온 김에, 아들 지하철도 태워볼 겸 영광도서로 향했다. 부산에서 생겨난 가장 큰 서점이고, 마치 마지막 서점인 것처럼 느껴지는 영광도서. 




건물의 위치는 그대로다. 매장 건물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들어서면 두 개의 건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하 1층에는 가보지 않았다. 늘 그런듯이 모든 일정의 계획은 내가 세우지만, 일정의 진행은 아들의 컨디션에 따라 결정된다. 아들은 1층에서 마음에 드는(?) 스티커 책을 발견했고, 더 이상 서점 탐방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아빠 책도 골라야지" 라고 말하며 4층까지는 올라가봤다. 


내 취향은 주로 2층과 4층. 비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4층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들은 3층에서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서점 안에 있는 카페에도 가보고 싶었다. 골라든 책(프레이리의 교사론)을 들고서 앉아서 따뜻한 커피 옆에서 여유를 좀 부리고 싶었다. 여유는 다음으로. 




직원분들이 베스트셀러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광도서 베스트 셀러도 일단 유명세를 탄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얼마되지 않는 미디어의 힘은 정말 대단하긴 한가보다.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면 베스트셀러로 머무는 것은 그나마 쉽지 않을까? 

베스트셀러 목록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쯤해서 진주문고의 매대가 생각났다. 진주문고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 진주지역에 관한 책,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 놓은 매대. 책은 역시 표지를 드러내고 있을 때 더 눈길이 가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모든 책이 표지를 드러내고 전시되어 있다지 아마. 


걸리버 여행기도 여러권이다. 이렇게 여러권을 비치해둔 점에 감사하게 된다. 두 권이상을 사고 싶은 데, 아들과 갈 길이 멀어서 그냥 왔다. 메모해둘 용도로 사진을 찍어왔다. 

서점 안에는 '책을 사진으로 찍으면 안된다' 라고 되어 있었다. 저작권 때문이라며. 언제 읽은 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부분 부분 사진을 찍는 것이 문제는 안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 글귀 때문에 책표지 찍는 데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예상치 못했던 책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사고 싶은 책을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서점에 도착해 사려고 했던 책도 사고, 있는 지도 몰랐던 책도 사게 되는 게 아닌가. 역시 서점에는 혼자서, 한 두어시간 여유를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본 적이 별로 없다. 대개 아들책을 먼저 사주고 아들이 그 책을 보는 동안 잠시 나의 시간을 갖는다.)



두꺼운 책들도 탐난다.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사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때가 많다. 팔리지 않으며 절판되지 않겠나. 그럼 나중에는 사려고 해도 못사게 되지 않겠나. 



분야별 베스트셀러도 계단복도 공간에 진열되어 있다. 





책은 누운 채 쌓여 있어도 보기에 좋다. 




출입구에 고객을 위한 검색대가 있다. 그리고 손이 잘 가는 곳에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얼굴을 들어내고 있다. 




외부에는 여행/건강관련된 실용서 위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스티커책을 사고 의기양양한 우리 아들. 서점을 나와서 운동화를 사러 간다. 그렇다. 오로지 아들을 위한 일정이다. 

영광도서도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서점이 커지면,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과 손님과의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주인 혼자 문고판 위주로 책을 팔던 내 어릴적 동네 서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서점에 책을 사러 가지만, 책을 건내주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순간이 귀하다. 넓지만 아늑한 서점이 되려면 독자와 서점지기들의 거리가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책은 역시 표지를 내놓아야 이쁘다. 누구도 찾지 않아서 옆모습만 드러내고 있는 책들도 가끔 그 얼굴을 드러낼 수 없을까? 소개되어야 눈에 띄고, 눈에 들어야 팔리게 된다. 책은 더욱 그렇지 않은가. 서점만의 베스트 셀러나 서점이 추천하는 책들이 얼굴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서점에 갔으니 책을 샀다. 앞으로도 영광도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살아남기를 바란다. 또 아들과 올테니까. 


지역서점이, 대형서점이 서점으로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응하는 서점만이 살아남는다. 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진주문고 평거점, 2015.10.12.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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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그래도 서점이 계속 없어지는건 별로 달갑지 않지만, 그렇게 따지면 저 자신도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더 많이 보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얘기 함부로 할 처지가 못되는 거 같아요.

  2. 댓글 감사합니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일단 책을 읽기만 한다면야 서점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거 아닐까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다는 게 문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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