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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매일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매일의 사진

얼굴을 보여줘, 내 사랑. 

 

매일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내가 쓴 글에는 내가 찍은 사진을 하나 넣으려고 한다. 글만으로 부족하니 사진으로라도 그 부족함을 좀 매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도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사진을 찍는 양이 다시 늘었다. 

피곤해서 어제 좀 일찍 잠이 들었고, 오늘은 제법 일찍 일어났다. 아내는 이미 출근을 했다. 씻고 나왔는데도 7시가 되지 않았으니 오늘은 준비가 빨랐다. (매일 좀 이렇게 하자) 보통 아침 뉴스를 켜는 편인데, 오늘은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는 클래식 FM에 맞춰져 있다. 어제 아들은 온라인 수업'만' 듣고 과제도 하지 않고 유튜브를 보았고 나에게 걸렸다. 나는 할 일도 다 하지 않고 놀아버린 아들을 혼냈고, 티브이 금지령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뉴스를 보지 않았다. 여러 번 들어봤지만 제목은 도저히 기억하는 일이 없는 클래식 음악을 또 들으면서 아침을 준비했다. 

아들은 이제 아침으로 뭘 주든 군말없이 먹는다. 딸은 아침으로 뭘 주든 군말은 없지만 잘 안 먹는다. 아이들의 아침 식사 준비는 나의 몫이라 전날 밤부터 나는 아침에 뭘 해야 하나 고민한다. 고민은 하되 시원하고 만족스러운 답은 없다. 어제 사둔 볶음밥용 야채를 꺼내고, 얼마 전 반찬하고 남은 햄을 꺼낸다. 새로 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를 볶는다. 산지 얼마 안 된 프라이팬을 쓰는 기분은 참 좋다. 기름을 별로 두르지 않아도 재료들이 프라이팬 위에서 미끄러지며 몰려다닌다. 들러붙지 않고, 그래서 웬만해서는 타지도 않는다. 나는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재료들은 미끄럼 태웠다. 밥을 아이들 먹을 만큼 넣고 다시 볶는다. 햄 때문에 적당히 간이 되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볶은밥에 계란을 풀어 넣고 또 좀 더 뒤적인다. 다 된 볶음밥을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는다. 밥그릇 모양이 된 밥을 예쁜 그릇에 뒤집어 담는다. 괜히 깨를 뿌린다. 아들한테는 콩나물을 곁들여 냈고, 딸을 위해서는 골드키위를 깎아 냈다. 

일어난 아들을 안아주고 식탁에 앉힌다. 아들이 밥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딸이 자고 있는 방에 불을 켠다. 딸이 자는 시간은 방해하지 않는 편인데, 겨울이 되면서 해가 너무 늦게 뜬다. 그만큼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져서 어쩔 수 없이 며칠 전부터는 불을 켠다. 잠에서 깨어날 때 보통 딸은 기분이 좋지 않다. 잠이 깨려는 지 뒤척이는 딸을 보고 나는 옆에 가서 앉는다. 내 밥은 이미 재빨리 먹은 후다. 같이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을 한 권 꺼내서 읽기 시작한다. 책을 좋아하는 딸은 우선 아빠가 뭘 하나 보더니, 이내 내 다리를 배고 누워서 책을 본다. 그림책을 읽고 있으니 아들도 옆에 와서 듣는다. (밥 먹을 때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겠니?) 책을 다 읽고 딸을 앉아준다. "아빠가 볶음밥 했어. 맛있겠지?" 나의 말에도 딸의 얼굴은 시큰둥하다. 그래도 좋아하는 키위가 같은 상에 올라가 있으니 숟가락을 뜬다. 볶음밥은 간이 안되어 먹기에 별로 좋지 않았다. 케첩을 딸에게 갖다 준다. 딸은 느긋하게 키위만 먹는다. 나는 양치질하고, 방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틈틈이 한 숟갈씩 떠서 딸 입에 밥을 넣는다. 

시계가 8시를 가리키면 이제 슬슬 느긋한 마음이 사라진다. 딸이 밥을 다 먹고 나니 8시 15분. 늘 마음은 8시 30분에는 딸이랑 같이 유치원을 향해 출발하고 싶은 데 그렇게 되는 때가 별로 없다. 아들에게도 세수하고 양치질하라고 시킨다. 금방 마치고 나온 아들은 컴퓨터를 켜며 온라인 수업을 준비한다. "여름이면 좋겠어." 마음에 드는 옷이 없는지 딸은 여름 타령이다. 이옷 저 옷 빼 보여주며 결국 옷을 고른다. 이제 머리를 묶어야 한다. "양갈래로 묶고 땋아줘." (딸, 땋는 건 너무 힘든데..) 머리를 땋을 거였으면 앞머리도 내지 않고, 머리도 자르지 말았어야 했다. 층이진 머리를 땋으려니 자꾸 머리는 내 손가락을 빠져나간다. 간신히 머리를 땋고 고무끈으로 단단하게 고정한다. "자, 가자.." 아니구나, 세수하고 양치질해야지. ㅠ

세수와 양치질은 혼자 하라고 두고(이때는 이미 내 목소리는 약간 기분 나쁜 투다), 내 옷을 입으러 간다. 집 안을 종종걸음으로 다니다 보니 나는 금세 더워진다. 옷을 입고 차 열쇠, 지갑을 챙기고 다시 딸을 본다. 뭘 하는지 양치질도 세수도 늦다. 다시 채근해서 간신히 끝낸다. 이제 작년 유치원 산타에게서 선물 받은 벙어리 장갑을 끼고, 외투를 입고, 신발을 신고 마스크를 한다. 제각각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나는 숨이 가쁘지만 티 안 내려 애를 쓴다. "아들, 안녕. 잘하고 있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의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야~, 아빠가 땋은 머리 좀 찍어두게 뒤돌아봐." 딸은 자꾸 얼굴을 가리더니, 뒤돌아 서서도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얼굴 안 나온다고~" 딸은 꺄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를 향해 걸어가는 데, 내 뒤에 있던 딸은 나를 앞지르며 "역전~"이라 외친다. 

아들도 딸도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가 아주 가끔 있다. 하지만, 제 멋대로 하며 원하는 것을 내게 거침없이 말해주면 하고 바랄 때가 더 많다. 내 말을 안 들으면 피곤하긴 하겠다. 하지만, 어디 가서 든 자기가 원하는 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을 테니 집에서부터 연습이 필요하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딸은 자주 묻는다. 다행히 오빠도 엄마도 곁에 없을 때만 묻기 때문에 나는 "우리 딸이지." 이야기한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런 마음이니까.

오늘 찍어둔 사진을 펼쳐보며 내 하루를 가득 채운 생각이 무엇이었나 되짚어 봤다. 온통 딸 뿐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보니 딸에 대해서 쓰고 싶어 졌다. 내일 나는 무슨 글을 생각하며 어떤 사진을 찍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침에는 분명 딸이나 아들 사진을 하나 찍겠지. 글로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