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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아들을 위해 준비하는 참기름책장

내 책장의 일부

아들을 위해 내 책장을 잘 꾸미고 싶다. (여기서 아들이란 내 아이를 뜻한다. 그저 지금 혼자 읽기가 가능한 것은 아들 뿐이라 이렇게 쓴다) 그래서 전자책을 구입하더라도 좋은 책은 종이책으로 다시 사게 된다. 아, 그래서 전자책으로 읽는 게 편한데도 굳이 종이책을 사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좋은 책은 두 번 사게 된다는 말이다.

좁지 않은 아파트인데도 내게 허락된 나만의 공간은 옷방과 책장 뿐이다. 그렇다. 내 물건을 마구 쑤셔 넣어도 아내의 잔소리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공간. 하지만 옷방은 공간이긴 하지만, 공간이라 부를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옷을 갈아 입고, 옷을 걸어 놓기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의자를 놓을 수는 있겠지만, 옷장의 먼지와 내 비염을 생각하면 의자는 거기에 두어서는 안된다. 앉을 자리 하나 마련할 수 없다면, 그곳은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게는.

책장은 또 어떤가. 책장은 오로지 책을 넣는 공간이다. 내 책으로 이미 가득찬 데다가 수시로 아이들의 책이 침범하거나 아내의 자료가 공간을 넘본다. 여유가 없는 책장은 더 이상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책장이 하나 더 필요하다. 그 책장은 다 채워지기 전까지는 공간일 수 있다. 아내는 집을 좁게 만드는 가구는 무엇이라도 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책장을 하나 들이고 싶다.

책은 잘 선별해서 꽂는다. 우선 장르별로 나눈다. 하지만 소설을 그닥 선호하지 않아서 별다른 장르가 없다. 인문, 사회, 경제, 영어. 역사는 조금씩 늘고 있고, ‘어쩌면’ 시리즈나 ‘유유출판사’ 책 덕분에 문고판도 자리를 제법 차지하고 있다. 가끔 일부러 시집도 한 권 사고는 하는데, 시집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 한다기 보다 애매하게 남은 공간을 매우는 역할을 한다.

200권이나 500권으로 내 궁극의 책장을 만들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장서의 괴로움’을 비롯하여 여러 애서가나 장서가의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깨에서 참기름을 짜내듯, 여러 책들 사이에서 엑기스가 될 만한 책들을 남긴다. 책장 앞에 서기만 해도 고소한 책 냄새가 풍기도록 책을 고른다. 읽고 버리는 책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그리고 또 책을 산다. ‘아, 도저히 500권으로 맞추기는 어렵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읽지 못한 고전, 현재의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베스트셀러를 구입한다. 아주 천천히 읽으면서 제발 내가 책을 잘 가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날, 이제는 학습만화가 시시해진 아들이 몰래 나의 책장을 탐색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빠는 도대체 왜 이렇게 두껍고 재미없는 책을 읽는거야?’ 생각하면서도 내 책을 훔쳐내길 바란다. 책을 후루룩 펼쳐 넘기며 내가 밑줄 긋거나 포스트잇으로 태깅해 놓은 페이지에 눈길을 줬으면 한다. 불빛에 끌려가는 나방처럼 책 옆에 또아리를 틀었으면 하고 상상한다. 이건 상상만 한다. 책은 권할 수 없고, 책을 읽기를 강요할 수도 없다. 참기름 같이 향기나는 책이 있다면, 냄새가 모두 해결해 주겠지. 아들의 다리에 책이 내려 앉았을 때, 책들은 소리없이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토이스토리 속 장난감들처럼, 새로 만난 주인을 위해 제 몸을 단정히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책으로 아들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내가 읽은 책을 읽은 아들에게 궁금해서 물을 것이다. “어때,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