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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6살 딸은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딸이랑 만든 솔방울트리



딸이랑 아들을 의자에 앉히고 물어본다.
“산타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정확하게 소원으로 빌었어?”
“응, 나는 전갈이랑 용이랑 판박이 해달라고 빌었어.” 10살 아들이 말한다.
“나도 받고 싶은 거 있어” 6살 딸이 말한다.
“뭔데?”

딸은 산타한테 받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코로나 없어지는 거”라고 했다. 무엇을 받고 싶으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을 받고 싶다’라고 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사라지는 걸’라니. 딸에게 어쩌면 산타는 ‘선물을 갖다 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내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 보다. 그러나 저러나 ‘산타에게 받고 싶은 소원, 빌고 싶은 소원’으로 ‘코로나 없어지게 해 주세요.’가 가능한가.

당장 나한테 산타가 선물을 준다고 하면,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256기가. 라고 말할 것 같다. (딸, 아빠가 철없어서 미안) 하지만 딸은 코로나가 없어졌으면 좋겠단다.

딸은 코로나 덕분에 많은 것을 잃었다. 유치원은 수업 대신 돌봄으로 진행되고 그만큼의 ‘활동’도 사라졌다. 소풍도 체육대회도 하지 못했다. 여름에는 워터파크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워터파크는 부산 가는 길에 쳐다보기만 했다. ‘방방’을 좋아하지만 올해는 당연히 가본 적이 없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제주든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그건 아예 상상도 불가하다. 아내는 제주도에도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불안하다고 했다. 코로나가 앗아간 것들을 모두 돌려받으면 이전의 삶과 비슷한 ‘정상’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선물 받은 것처럼 행복할까.

딸이 ‘코로나 사라지게’ 해달라고 빌 때 나는 유치원 선생님에 그런 말을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여러분, 코로나 사라지면 좋겠죠. 선생님도 그래요. 우리 같이 그렇게 소원 빌어봐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확인할 수가 없으니 그저 딸의 생각이라 받아들이자.

어제 앉힌 김에 ‘코로나 없어지는 건’ 산타할아버지가 갖다줄 수 있는 게 아니니 할아버지가 사거나 만들어서 갖다 줄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 보자.라고 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의 선물은 이미 포장을 다 했을 거라고. 딸은 잠깐 눈을 오른쪽 대각선으로 올리며 생각을 하더니.

“갖고 싶은 게 있어” 한다.
‘레고를 만들고 싶다’ 고 했다.
같이 레고 홈페이지에 가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아본다.

퇴근한 아내에게 레고 홈페이지를 보여주며(어쩔 수 없이 가격도 보여주며), “딸이 이거 갖고 싶데”라고 했는데, 눈빛이 별루다. 아내는 색종이를 가득 사서 안기겠다는 저렴한 선물을 생각했던 것이다. 찌릿. 딸은 너무 늦게 말하지 않은 덕분에, 그리고 ‘착한’ 아빠 덕분에 아마도 산타할아버지에게서 ‘현물’ 선물을 받게 되겠지.

코로나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당분간을 기다린 시간이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어 간다. 모두가 산타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빌 수 있고, 그게 이뤄진다면, 누구나 ‘코로나 없어지게 해 주세요.’라고 빌까?

아니.
아닐 것 같아서 괴롭다. 누군가는 당장의 벌이 때문에 코로나 따위는 소원목록에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코로나 덕분에 돈벌이가 되어서, 은근히 내 가족이 걸리는 게 아니라면 이 상태가 조금 더 지속되어도 좋지 않겠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당장 한 100억만 내게 줍쇼 하면, 세상이 지옥이라도 내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닌, 내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고통에 예민한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벤져스에서의 아이언맨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나. 목숨까지 내놓지는 않더라도, 세상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사람 덕분에 ‘살아’ 있지 않을까.

우리 딸은 어떤 사람이 될까. 그저 지금 6살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만큼만 계속 자라주면 좋지 않을까. 딸은 이렇게 의젓한데, 아빠의 소원은 그저 우리 가족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 딸, 아빠는 영웅 되기는 글렀다. 나한테는 네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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