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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많이 먹고 살찌란 말 하지 마세요.

 

내 자전거와 내 몸

내가 어릴 때 자주 듣던 말


좀 많이 먹어라.
먹고 살 좀 쪄라.
왜 이리 말랐누.

어릴 때 자주 듣던 말인데, 그게 어릴 때에만 끝난 건 아니었다. 말랐다 라는 말은 서른이 될 때까지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초등학교 때에는 더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친인척에게 많이 들었다. 매일 보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가끔 보는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지금 나를 보고 많이 먹고 살 찌라는 사람은 없다. 몸무게가 70킬로 그램을 넘기면서는 살이 빠진 것 같은데요 라는 말도 듣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이제 내게 그럴 말을 함부로 할만한 사람들이 충분히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참으로 편의가 높아지는 일이다.) 179에 73~4킬로. 이제는 누가 봐도 ‘적당한 몸’으로 보이나 보다. 내 인생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적당한 몸을 갖게 되는 데 사십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나는 내 몸에 불만족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아주 쉽게 내 몸을 ‘부족한 상태’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내 아들이 이제 말랐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많이 먹고 살 좀 쪄야 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남이면 얼굴 붉히고 말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많이 먹고 살찌라’는 말은 친절한 관심과 덕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 아들을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먹고 살찌라는 말은 그저 한 사람의 외모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고로 폭력에 가까운 행동이다.


마른 건 마른 것 아닌가?

마른 사람을 두고 말랐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사실에 대한 재진술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이란 것은 아마도 보기 좋은 몸에 대해 전 한국인이 공유하는 인식이 있다고 전제해야 가능하고, 아니면 사람의 건강과 평균에 가까운 체중이 건강에 미치는 상당한 영향을 가진다는 과학적 근거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때 건강에 미치는 영향까지 언급될 정도라면, 이는 덕담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의사의 진료와 치료를 요하는 영역이다. 그런 대상을 두고 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잘 먹고 살 찌우세요.’라고 처방할 리는 없다.

사실은 사실로 말하는 것은 어떠한 가치 판단도 없다라는 식으로 흔히 말하고는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하면, 대머리에게 대머리라고 하는 것, 피부가 까만 사람에게 까맣다고 하는 것, 전라도 사람에게 전라도 사람이라 하는 것,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공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그저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어떠한 모욕도 의도한 게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발화함으로써,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반박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희화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실은 대개 의견이나 가치판단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당신이 내게 너무 말랐네 라고 말하는 것은 마른 것은 좋지 않아, 너는 정상의 상태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뚱뚱하다는 말은 어떤가?

뚱뚱하다는 말은 어떤가? 야, 너 제법 뚱뚱하다.라는 말이 오갈 수 있는 사이는 어떤 사이일까? 죽고 못 사는 친구 사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친구 사이마저 건강한 관계로 지속될 거라 믿고 싶지 않다.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 말하는 것은 사실일 뿐인가? 왜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일인데, 말랐다고 말하는 것은 별생각 없이, 별 부담 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해도 되는 말인가?

먹고 살 찌워 Vs. 먹지 말고 살 빼

먹고 살 찌우라는 이야기나, 먹지 말고 살 빼라는 이야기는 모두 틀렸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나?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잠자기 전에 폭식을 하고 자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다. 그저 남들만큼 먹는대도 살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 이런 지시나 조언은 가능이나 한가? 살 빼서 이뻐져라. 살 찌워서 좀 둥글둥글한 이미지로 살아봐라. 모두 지시할 수 없는 말이고, 개인이 통제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적당한 체중은 얼마인가? 나는 왜 평균에 근접해야 하나?

만에 하나 먹어서 살을 찌울 수 있고, 안 먹어서 살을 뺄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나는 ‘남들이 보기 좋은 몸무게’를 가져야 하나? 왜 나의 몸이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춰져야 하나? 다음의 말들은 어떤가?
- 기본적인 화장은 좀 하고 다녀.
- 남보기 부끄럽지 않게 옷은 좀 신경써서 입어야지.
- 흰머리는 별루니까 염색하는 게 좋지 않겠어?
- 아, 키만 좀 더 컸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반드시 내 몸을 통제하려는 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내 몸(내 외모)에 대해 칭찬함으로써 나를 통제하려 들 때도 있다.
- (곱슬머리에게) 야, 너는 머리 편 게 이뻐. 계속 그렇게 좀 다녀.
- 와, 오늘 너무 멋져요. 남편이 부럽습니다.
- 그렇게 입으니까 5살은 젊어보여요.
- 쌍꺼풀 수술하니 훨씬 예쁘네.
- 역시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이뻐.

나의 몸은 나의 것이고, 나의 몸에 대한 평가는 나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나 조언은 내가 요청하지 않는 이상 내게 제시해서는 안된다. 내 사람됨의 첫 번째 영토이자,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영토는 내 몸이다.

적당한 몸무게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균 몸무게는 있을 지 몰라도, 모두가 평균에 근접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미 말한 대로, 건강을 해칠 만큼 저체중이거나 고체중인 경우는, 조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료와 처방이 필요하다. 그때, 그 진료와 처방을 받고 따르고 내 몸을 돌보는 사람은 나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닌데도, 내 몸에 입을 대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내게 그런단 말인가.

내 아이는 마르지 않았다.

내 아들은 마르지 않았다. 아마 평균의 체중보다 적을 수는 있다. 그래서? 아들은 올해 들어 감기에도 걸린 적이 없으면, 이유없이 몸이 아프다고 한 적도 없다. 매일 태권도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자전거를 탄다. 매일 밤 9시 전후로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7시 전후로 일어나며, 만성적인 피로를 호소하는 일도 없다. 매 끼니는 잘 챙겨 먹고, 간식도 잘 먹는다. 탄산음료는 전혀 마시지 않고 편식도 없다. 그런데도 더 먹고 살을 찌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덕담이라는 이름의 외모 평가

한국사회에서 별 생각없는 어른들의 덕담은 대개 어리거나,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에 대한 참견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어릴 때, 엄마와 아빠는 너, 말랐으니까 억지로라도 더 먹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명절에 만난 다른 인척이 ‘왜 이렇게 말랐냐?’며 나에게 말하면, 아빠는 기분 나빠하는 표정이었고, 엄마는 내가 잘 먹는 게 있으면 조용히 더 챙겨주었다. 내 삶에 좋은 변화를 주고 애정을 가진 사람은 말로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늘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누군가 피곤해 보이는가? 와 얼굴 너무 안 좋네. 몇 주 안 본 사이에 팍 늙은 것 같아. 라고 말하지 말고, 맛있는 치킨이라도 쿠폰으로 쏘시라.
누가 좀 마른 것 같은가? 와 이리 말랐노. 살 좀 찌워야겠다.입을 터는 대신에, ‘뭘 좋아하니?’ 묻고, 맛있는 걸 선물하라.

못하겠다? 그럼 말도 마시라.
입맛 대는 사람은 상대하지 마시라.


너나 잘 하세요.

나는 지금 건장하고, 내 아들은 지금 건강하다.
나는 누구라도 내 아이가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도록’ 만들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포함한) 몸을 평가하고 규정하고, (치료나 재활의 목적이 아니라면) 몸에 대해 조언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제각각이고, 마음이 제각각인 것처럼, 몸도 제각각이다.
그 중요한 걸 모른 척 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