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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절여진 하루와 엄마의 김치

오늘 화장실에 딱 한 번 갔다. 커피는 딱 한 잔 마셨다. 점심 먹고 바로 책상에 앉았다. 수업은 1교시부 3교시까지 연달아하고, 6교시에는 부담임으로 2학년 학급에 가서 창체활동 지도하고, 7교시에는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개학한 지 이틀이 지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긴 이틀을 보내고 나니 피로감이 크다. 와중에 아빠가 보낸 엄마의 사진을 받았다.

김치 담그는 엄마

"봄배추에는 물이 많아서, 그 전에 겨울배추 사다가 담아두려고."

딸들은 단톡방에 올라온 엄마 사진을 보고, "쉴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답을 남겼다. 나는 그저 기막히게 좋은 사진이라 그냥 보고 있었다. 아빠가 대충 엄마를 보며 찍었을 사진인데 이렇게나 좋다. 퇴근하며 전화하니, 가지러 오라고 한다. 가지러 가고 싶다. 익은 채로 젓가락질 못 받는 우리 집 냉장고 속 김치는 볶아 먹든, 찌개로 해 먹든 얼른 다 치우고, 저 싱싱한 김치를 먹고 싶다.

피곤한 하루지만, 피곤하지만 하지는 않다. 내가 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고, 이 일은 중요한 일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을 하고 나서도 곤죽이 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자출도 하지 않고 있으니 체력이 좋아졌을 리도 없고, 어젯밤에는 뒤척이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오늘 나의 상태는 괜찮은 편이다. 자꾸 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 조절 조절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엄마를 일을 하면서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시키지 않은 일을 엄마는 정성껏 한다. 자기 입에 별로 들어가지도 않을 저 많은 김치를 담그며 좋아한다. 김치를 씻고 물을 빼고 양념을 치대면서 힘이 들텐데도 얼굴은 평온하다. 오래전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니었던가 싶다. 인생 제일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빠였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 만큼의 사람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