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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선택과목 출석부 만들기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

내 차만 남은 학교


2월을 이렇게 바쁘게 지낸 적이 있던가. 수업을 걱정하기 보다 학교 걱정(?)하며 보낸 적이 있던가. 올해에는 내 교직 생활 처음으로 부장을 맡게 되어 어리둥절하다. 게다가 교육과정부라니. 내 흥미에 맞으려면 차라리 독서와 관련되어 있거나, 컴퓨터나 원격 수업에 대한 것이거나 하면 좋을 것 같지만, 모두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너무 겁내지 않고 하면 된다. 일은 천천히 하면 된다. 너무 잘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걸 명심하면 되는데..

개학 전에 교육과정부에서 할 일이 많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수업(출석)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세팅을 하는 게 주요한 업무다. 학교의 기본 정보를 새학년도 기준으로 입력하고, 학생들이 배울 교과를 네이스에 올려두고, 학생들을 학생들이 수강한 강좌에 배치하고, 담임 교사도 지정하고,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을 배당하며 수업하고 평가도 할 수 있도록 한다. 새로 전임 온 선생님들은 3월 1일이 되어야 네이스에 등장할 것이라 개학 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다 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 전임 교육과정부장선생님이 일단 학생들이 선택한 교과에 맞게 임시로라도 출석부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그걸 만들었다.

학생들의 학적에 변동이 있을 수도 있고, 선택교과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니, 그게 반영될 수 있도록 출석부를 만들어야 한다. 오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같은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낸 선생님의 글을 찾았고, 그 선생님이 올려두신 파일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다. 간단한 함수 정도는 쓰지만, 자동화된 출석부를 만들 수 있을만큼 더 엑셀을 잘하고 싶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데 시간은 이미 8시가 다 되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교무실을 나서는데, 주차장에 와 보니 내 차만 남아 있었다. 모두들 집에서 수업 준비 하고 계신가요? 첫날부터 수업도 해야 하는데, 수업 준비는 엄두를 못 냈다. 남은 며칠은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집으로 와서 우선 밥을 챙겨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했다. 9시가 되자 모두 잠을 자러 들어가고 나는 혼자서 일기를 쓰고, 오늘 한 업무 내용을 정리하고, 뉴스를 봤다. 내가 평화로운 이 땅에서 학생들 출석부를 만들고 있는 사이, 우크라이나에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키예브 시내에는 탱크가 들어왔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폭격을 피해 지하철 역으로 피해 있고, 푸틴은 당장 무기를 버리라고 말한다. 무기를 들고 쳐들어 와서 무기를 버리라니. 러시아 젊은이들은 전쟁을 멈추라는 데, 푸틴은 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인가. 전세계가 러시아를 비난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인류의 진보는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아질 때 가능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까지 공감하고 아픔을 체감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동물의 고통이나 권리에 대해 말하는 이 시대에, 다른 인간을 살상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을 보고 있다. 진보는 느리지만, 그 반동은 크게만 느껴진다. 푸틴이 일으킨 전 세계 긴장상태는 더 다양한 폭력적 행위도 기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모두가 전쟁에 참여해서 공멸의 가능성으로 가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영화 속에서처럼 열쇠를 돌리고, 버튼을 누르면 지구는 한 순간에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수 있다. 인류가 쌓아온 것들을 위협하는 저 전쟁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에 떨어지는 미사일 소리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의 공포는 더 격렬하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을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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