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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내가 사는 진주

진주, 자전거 타고 새벽커피, 혼자 커피 #coffeeoutside

나 혼자 커피


토요일은 새벽커피 하는 날이다. 시작은 아마도 겨울이었던 것 같다.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고, 6시 30분에만 모여도 어두운 하늘이 밝아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로 새벽 커피 모임을 거의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겁내야 하는 상황이라, 2년째 거리두기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거리두기가 없어도, 친하고 싶은 사람들을 잘 볼 수 없는데, 거리두기로 위협하니 친하고 싶은 사람들을 보기가 정말 쉽지 않다.

새벽커피의 모임 취지는 진주 안의 여러 장소를 돌아가며 해뜨기 전에 모여 해를 보며 커피 한 잔 하는 것이었다. 각자 커피를 준비하거나, 함께 준비해서 커피와 간식을 먹고 이야기 하다가 헤어지는 게 계획이었다. 외국에서는 coffee outside 라는 제목으로 반드시 새벽일 필요는 없지만, 야외에서 자전거를 타고 만나 커피를 마시는 모임이 일어나고 있다. 내 기준에서도 일단 이동 수단의 기준은 자전거다. 자기가 마실 음료, 먹을 간식을 싣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가볍게 페달질을 하고, 같이 모여 나누는 커피는 얼마나 좋은가?

오늘도 모임을 진행하려 했으나, 갑자기 부산으로 가야 해서 모임을 한다 만다 공지도 못하고 오늘 모임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짧은 틈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밖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시간은 되지 않아서 캡슐 커피를 준비해서 갔다.


내 자전거 : 제이미스 오로라 엘리트

대충 간식을 주섬주섬 챙기고, 아래 위로는 따뜻하게 옷을 껴입었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겨울용 방한 장갑을 테스트 하기도 좋은 날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 이렇게 신날 수가 없다. 아무도 없이 그저 혼자 즐겨야 하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늘 소중하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부산까지 갈 수 있도록 얼른 자전거를 타고, 얼른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사뭇 여유롭게 페달링을 한다. 두껍게 입어서 몸은 전혀 춥지 않은데, 버프를 내리니 얼굴이 단단하게 굳어간다. 겨울은 겨울이다. 버프로 얼굴을 가리면서, 얇은 천조각이 주는 위안에 좀 놀란다.

해는 이미 떠오르고 있었으나 짙은 안개 때문에 어둡고 몽환적이다. 강변 자전거 길로 진입하는 길, 덕오마을로 가는 다리, 잘 조성된 자전거길, 그 앞으로 보이는 남강과 아침을 맞이하는 철새들. 그 모든 풍경은 하나의 틀 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데, 안개가 이 모든 풍경을 집어 삼키니 나는 하나의 풍경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평면에서 입체로 전개되는 팝업북을 펼치며 들어가는 돈키호테가 된 것 같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을 영상으로 찍고 사진으로 남긴다.

진주 남강, 비경은 늘 숨어있다


자동차를 탄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은 비경. 늦잠자는 사람에게는 들키지 않은 이 장면. 비슷한 풍경은 어디에나 어떤 시점에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순간은 딱 한번 뿐이다. 그걸 음미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 아름다움은 드러난다. 사진으로 찍어도 되는데, 그걸 영상으로 남겼다. 요즘에는 고요한 풍경을 영상으로 길게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은 찰나만 기록하고 그 찰나만으로는 그 고즈넉함을 제대로 담기 어려운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을 담으려면, 끝도없이 영상을 찍을 수는 없겠지만, 그 풍경 중 한 부분을 영상으로 남긴다.

커피는 반도 채 마시지 못하고, 시계를 보며 깜짝 놀라 집으로 달려간다. 해는 좀 더 떠오르고, 나는 쫓기듯 집으로 간다. 아무 말 없이 호로록 커피 마시는 소리 뿐이었지만, 그닥 맛있지 않은 캡슐커피였지만, 어떤 커피보다도 향긋하다. 단단하게 굳은 입안으로 커피를 넣으면, 맛만 느끼는 게 아니라, 커피의 온도를 맛볼 수가 있다. 안락한 공간에서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다. 비박을 하고 야생을 체험할 수는 없지만, 자전거, 겨울 바람, 무소음, 커피만으로 새벽을 가득 채우니, 마치 기도로 충만한 마음 같다.

내일도 가능하려나?

다음주에는 가능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