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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진주시장님과의 데이트

지난 주에 도달2 태곤씨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다. 태곤씨가 정희씨와 함께 해온 여러가지 노력들이 '마을 여행 지도'가 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떠들썩 할 일도 신나는 일도 없는 요즘에 '활력을 주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얼마 후 '진주시장과 시민간의 데이트'가 기획되었다고 나에게도 와줄 수 있겠냐고 태곤씨가 물었다.

 

글쎄.

 

어떤 자리에 초대받으면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장님을 만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망경동에서의 여러 행사와 모임에 내가 기여한 부분이 있으니 같이 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태곤씨에게 고맙기도 하고, 자신이 칭찬받는 자리에 나를 불러줘서 또 고마웠다. 행사의 제목이 '데이트'이기도 하고, 태곤씨가 약간의 소개 자료를 만들었길래 나도 일단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그 자리에서 태곤씨도, 정희씨도, 경원씨도, 박민철씨도 만나게 되었다. 시장님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도 안고 있기는 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출입은 1층 중앙통로로만 가능했다. 지하2층에 주차를 하고(시청 주차장에 1시간 주차는 무료라는 것을 알게됨),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궁금했던 2층 시청각으로 갔다. 카페를 마주하고 북카페가 있었다. 시청각은 진주문고에서 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책을 골라놓았는 지도 궁금했고, 눈에 띄는 책을 하나 보고 사진으로 찍어뒀다.

 

제주도 오름을 손그림으로 그리고, 코스에 대해 안내한 책

 

5층 상황실에 도착하니, 손님을 맞이하는 안내판이 붙여져 있다. 상황실 안에는 역대 시장들의 사진이 붙어 있어 잠시 구경한다. '데이트'라지만 코로나 때문에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좌석 배치

 

약속한 4시가 되자 시장님이 들어오셨고, 별다른 의례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사회도 없고 특별한 주제나 형식도 없었다. 시장님도 말씀하셨지만,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안전한 게 최고다.

 

시장님은 일부러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서로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눈치게임 하듯 각자 조금씩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태곤씨와 정희씨 부부는 제외하고) 4년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나무로 무언가 만드는 걸 배우겠다고 전화를 해서 연결되고, 공간을 만든다는 사람을 찾아가 공간에서 모임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연결되고, 모임이 생긴다니 참여하겠다고 해서 알게 되고, 그렇게 그 자리에 참석한 우리 다섯 명은 서로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무런 배경도 없이 그저 '사람들이 즐겁게 서로 같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생각한 사람들이 서로 덕담 나누는 분위기처럼 되어 버렸다.

 

우리는 꿈이 많다. 그게 반드시 진주를 위한 것은 아니다. 애초 '진주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라고 생각한 게 아니다. 내가 사는 주변, 나와 만나는 사람들과 즐겁고 재미나게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실천하다 보니, 그게 진주를 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곤씨의 도달2에서는 여러 개의 그림모임, 노래 모임, 독서모임, 별 목적 없는 모임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로 모두 셔터를 내린 것 같은데도 와중에 민들레꽃처럼 모임을 피워내고 이어나가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시장님은 한 해를 코로나 속에서 살다보니 자칫 모두가 활기를 잃고 새로운 가능성이나 희망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셨다. 그 부분은 나도 걱정이 되기는 한다. 코로나 전파를 막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한다'라고 그냥 주저 않으면 안 될텐데. 나도 당장 새학기가 시작되면, 어떻게 작년과 다르게 몸을 움직여 틈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된다.

 

박민철씨는 '진주의 이야기를 발견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태곤씨가 하고 있는 일에 감동한다고 말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웃어준 것이 도시달팽이 1호를 짓고, 2호를 손보는 일보다 더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진주시장님은 진주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진주시민에게, 다른 지역사람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 적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태곤씨가 말한 것처럼, 지금 현재의 진주를 기록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무엇이 기록되고, 무엇은 기록되지 않는가? 어떤 기준에서 기록하고 기록에서 뺄 것인가 결정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시청에 있는 분들도 굳이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여러 창구를 통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정말 눈에 띄는 성과나 변화를 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진주를 위해서 서로간의 여러가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맞다. 시민과의 데이트 모임이 끝나고 실무를 맡고 있는 과장님, 팀장님들이 명함을 건내며 더 많은 이야기를 앞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코로나만 없었다면 하고 또 생각하게 되지만,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발전과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의 데이트 자리에서 나도 몇 마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진주시민을 대표해서 일을 하고 있는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활기차게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서 좋았다.

 

 

도시의 발전을 가늠하는 여러가지 척도가 있을 것이다. 인구의 증가나 산업의 발달, 세수의 증가 등 다양할 것이다. 그에 대해서 나는 바가 별로 없다. 어떤 의도에서든 시장님이 이야기가 있는 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50년, 100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좋았다. 무엇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간다는 마음이 좋다. 도시의 변화는 과감한 정책 한 두가지로 마련될 수도 있다. 하지만, 늘 변인은 있고 가장 큰 변인은 사람이다. 내가 내 도시를 살기 좋게 하는 데 이바지 할 수도 있고, 도시의 발전이나 성장을 헤칠 수도 있다. 의도가 어떻든 말이다. 그러니 우선 내 삶의 반경을 생각했을 때, 나 혼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과 같이 즐거울 수 있는 건전한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진주에 대한 기록'에 대해 생각하면서, 매주 한번 정도는 '진주'를 소재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이 블로깅을 하는 글쓰기 친구들에게도 권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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