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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나이듦이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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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서 내가 나이 들었다 말하면, 분명 죄송해지겠지.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 내가 지금 말하려는 불편을 그 분들은 더 느끼고 있겠지. 그렇지만, 이 불편에 대해 기록함으로써, 앞으로의 불편에 어떻게 내가 적응할 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

 

아내는 일을 미루는 편이 아니다. 새해가 시작되었고, 올해는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해다. 우리는 둘 다 홀수년 해에 태어났다. 새해부터 건강검진 이야기를 꺼내더니 결국 오늘 가게 되었다. 나같으면 아마도 연말까지 미룰 것이다. 정말 미루었던 적이 있고 그때는 무수한 인파 속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위내시경은 비수면으로 하기로 했다. 위내시경을 한번 해본 적이 있는데, 프로포폴이 내게 맞지 않았던지, 아님 약간의 수면 상태에서 이상한 행동을 한 건지 당시 의사선생님이 앞으로는 수면 내시경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수면내시경 후에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내시경을 마쳤나 인식도 못했는데,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비수면의 단점은 괴로움

수면내시경은 그냥 잠들면 된다. 그리고 끝. 비수면 내시경의 경우 내시경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먼저 위장 안의 기포를 없애주는 약을 먹는다. 홍삼엑기스 같은 작은 비닐용기에 다긴 것을 먹으면 된다. 맛이 없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눕거나 눕기 직전에 목을 마취시키는 약을 분사한다. 그리고 삼키면 되는데. 오늘은 약간 과일 맛 같은 게 난 것 같다. 그걸 삼키고 나면 ‘목이 내 목이 아닌 느낌이 된다’. 치과에서 마취제를 잇몸에 놓았을 때의 그 느낌을 아는 분은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느낌.

 

모로 눕는다. 입을 벌리고 있게 해주는 기구를 문다. 의사선생님이 들어와서 이제 내시경을 밀어넣기 시작한다. 이제 코로 숨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침을 삼키려고 꿀꺽 해봐도 삼킬 수 없다. ‘꿀꺽’할 때마다 내시경 때문에 좀 괴롭다. 곧 토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구역질은 나지 않는다.

 

내시경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의사선생님은 발로 스위치를 눌러 사진을 찍는다. 깊이 넣고 나면 역동적인 동작으로 내시경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한다. 배 안에 무엇인가 들어와 있다는 걸 제대로 느끼게 된다. 얼른 빨리 끝나기를. 사진이 왜 이렇게 많이 찍나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 찍는다. 뭔가 잘못되었나? 이상한 게 있는 것은 아닌가? 건강검진할 때만 되면 쫄보가 된다.

 

“이제 공기를 빼고, 물 넣고 끝내겠습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공기를 뺀다는 말을 듣고 나니 바로 속이 좀 편해진다. (목의 불편함은 그대로) 물은? 사실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물을 그냥 넣는다기 보다는 씻어내는 게 아닐까? 아무튼 곧 편해진다. 갑자기 목의 불편함이 더 한 것 같다. 끝날 때가 되니 그 불편함을 참는 게 더 어렵다.

 

그리고 끝.

 

비수면 내시경의 장점은 간편함

내시경에 비하면 채혈은 너무 우습다. 바늘이 들어가는 그 따끔함은 내시경의 불편함에 상대가 안된다. 아내는 내시경도 처음이요, 수면내시경을 더 처음이다. 그리고 기분 나쁜 표정이다. 누군가는 수면내시경을 하고 회복되면 잘 잔 것처럼 게운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비수면으로 하니 불편함은 있지만 마취도 회복도 필요없다. 가격도 저렴하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또렷이 알 수 있다. 이게 모두 장점이다. 몇 년 지나 대장내시경을 하게 되면 결국 수면으로 하면서 위와 대장을 한번에 끝내게 되지 않을까.

 

 

나이듦에 익숙해질까?

검사를 기다리면서 문진표를 작성하는 데, 한쪽 구석에 돋보기가 마련되어 있다. 40대, 50대, 60대라고 적혀 있다. 흠. 나도 곧 돋보기까지 써야 하겠구나.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가고, 가끔 담이 오기도 하고, 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잠들면 다음 날이 힘들다. 곧 내 온 몸은 나이듦이 어떤거지 내게 알려주겠지. 노안이 오고, 배가 나올지도 모른다. 무릎에 귀를 기울이면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도 적응을 하게 되겠지.

 

새로운 것을 찾으러 다니기 보다는 알고 있던 것, 잘 아는 것을 음미하는 방식을 찾아가겠지. 그러한 시점은 언제가 될까. 아마도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들을 찾아나서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나가겠지.

 

내가 생각하기에 나이듦의 아름다운에 대해 잘 묘사한 책은 Le Quin 의 No Time to Spare : Thinking About What Matters 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영어로 된 책이 더 좋았다. 르 귄은 사람들이 나이듦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에 대해 썼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반경이 줄고 움직임의 크기가 줄었다는 것도 인정했지만, 나이들어서 ‘할 일이 없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한가한 시간에 무엇을 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가 받은 충격이었다. “나는 한가했던 적이 한번도 없다.”며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이들었다고 한가해’진 것이 아니다. 그 글과 관련해서 나는 저 책의 제목은 ‘한가한 시간 따위는 없어요’ 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듦에는 적응할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게 괴롭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그 과정을 ‘피하고 싶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어제 그랬고, 오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저 하루하루 건강하게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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