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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온탕과 문학의 공간

고생한 내 브롬톤

폭염 속 뙤약볕 아래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은 느낌은 허벅지 깊이의 목욕탕 온탕, 그 온탕 안을 밀며 걷는 기분이었다. 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집은 비어있고, 실내 온도는 30도 라는 데 시원하게 느껴졌다. 내 앞에 있는 국어 선생님이 ‘글을 쓰려면 이 책은 꼭 읽어야 해요.’ 라고까지 말씀하셔서 나는 책을 사러 오늘 동훈서점까지 다녀왔다.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의 목록이 정해진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내게 같은 책을 만나지 않고서야 그 벽을 넘지 않고서야 생각의 지평이 넓어질리 만무하다. 내가 좋아하는 우치다 다츠루 선생님의 책은 거의 다 읽어가는 데, 남은 책은 ‘자크 라캉’에 대한 것이다. 결국 우차다 다츠루 선생님의 배움의 원천에까지 가봐야 하지 않겠나.

선생님이 말씀하신 책은 문학의 공간(모리스 블랑쇼)이다. 그 외에도 사람을 이야기했다. 보르헤스, 카프카만 내가 아는 이름이었다. 일단 ‘문학의 공간’을 강권했기 때문에 일단 알라딘에 넣었다. 중고온라인에도 올라와 있어서 책을 여러권 살거니 중고로 사볼까 하는데, 눈에 익숙한 판매자 이름이다. 동훈서점

동훈서점과 브롬톤

동훈서점 사장님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다. 중고서점 사장님이라니 왠지 나이가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코로나 이전에 한번 봤으니 나를 기억 못하지 않을까 했지만, 아마도 어렴풋이 기억은 하는 것 같았다. 오늘에야 다시 보고 나도 좀 더 정확하게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간단히 안부를 물었지만, 모두가 견디는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 쯤이었는데, 서점 안은 깨끗이 걸레질 되어 있었고 선풍기가 책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나는 브롬톤을 타고 간 덕분에 땀을 흘리며 들어섰는데, 바깥보다는 훨씬 시원했다. 시원한 물도 한 잔 얻어마시고 책 구경을 대강 했다. 시간이 충분치 않은데다가, 브롬톤 가방에 싣고 가기에는 이미 산 책이 많아서 대충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문학의 공간

문학의 공간을 사러 갔지만, 주인장이 블랑쇼 선집 중 다른 두 권까지 더 갖다 주셔서 다 사왔다. 그리고 딸과 아들을 위한 책도 한 권. 다음에 또 놀러오고 싶은 마음으로 ‘다음에 또 놀러올께요.’ 했다. ‘놀러’라는 단어가 적합했는 지 지금은 좀 의문이지만, ‘또 사러 올께요.’도 썩 자연스럽지는 않지 않은가?

자, 이제 나는 이 책을 읽고, 읽다가 그만두고, 다시 읽고, 잠들기도 하면서 글을 계속 쓸 것이다. 비루한 글이라도 매일 쓰면서 다음 날 또 쓰기를 다짐할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이 바뀌거나, 내 철학이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보는 세상은 어떨까.

더 젊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저 평범하고 어리석은 나는 헛되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노래나 부르며 맞이한 밤, 술에 취해 잠든 새벽, 숙취에 맞은 아침. 모두 지우거나 없애거나 무미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때 그 시간을 배움으로 대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저 아직은 그다지 늦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