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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 드레스덴 폭격과 시간 여행

제5도살장 : 드레스덴 폭격과 시간 여행

제5도살장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채로 자신의 결혼식으로, 자신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시점으로, 드레스덴의 제5도살장에서 폭격을 목격하던 순간으로 종횡무진 이동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 책은 어디서 보고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늘 한 책이 다른 책을 소개하고는 하는데, 일단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고 나면 잊는다. (알라딘 장바구니는 장바구니로만 쓴다. 주문은 진주문고에 한다.) 아무튼 이 책을 샀다.

제5도살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2월 13일부터 3일간 4000톤 정도의 폭탄을 드레스덴에 투하한 작전이다. 도심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25,000정도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지만, 드레스덴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다. 이렇게 쉽게 숫자로 사람의 사망자수를 써도 되는 것인가 싶다. 전쟁은 죽고 죽이는 일을 너무나 가볍게 만들어 버리다. 그리고 죽고 죽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타고 남은 잔해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버린다.

이 소설의 저자는 ‘커트 보니것’으로 자신이 직접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하고 도살장을 개조한 수용소인 ‘제5도살장’에서 포로 생활을 한 적이 있으니, 이 소설은 분명 자전적이라 할 만하다. 소설의 첫 시작부터 이것은 소설이며, 참으로 쓰기 어려웠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함으로써 마치 소설이 아니라 회고의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은 빌리 필그램의 시간 여행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가끔 ‘그 옆에 있었다며’ 빌리가 겪은 일을 전하는 데 불과하다. 시간 여행이란 대중 없어서, 빌리 필그램은 폭격당시, 결혼 생활, 검안사로 일할 당시, 비행기 추락, 드레스덴에서의 생활,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감금당하는 이야기를 오간다. 이 소설에 정보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온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여행하는 빌리를 천천히 따라가게 된다.

소설 속에는 So it goes. 라는 표현에 해당하는 ‘그런 거지 뭐.’ 가 자주 나온다. 대량 학살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 총살 당했을때, 어김없이 ‘그런 거지 뭐.’ 가 따라 붙는다. 이는 추임새 같기도 하고, 한탄 같기도 하다. 그리고 분명하게 전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끔찍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소설 속에 언급되는 외계인은 “트랄파마도” 행성 거주민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외계인들은 ‘모든 시간을 동시에 본다’는 점이다. 지나간 과거도 늘 진행 중이며, 현재는 현재대로 지속되고, 미래 또한 늘 미래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그 일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시간에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던 필 그램도 나중에는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다. 물론 필 그램이 정말 시간 여행을 하는 게 맞다면 말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병사들은 다 어리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이 Slaughterhouse-Five or The Children’s Crusade 인 것을 보면,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어린 소년병사들이 덧없이 죽고 죽어가는 데 대한 묘사가 왜 나오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 덕분에 저자는 ‘반전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소설의 장르는 ‘반전 풍자 SF’라는데, 소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만큼이나 복잡한 장르 이름이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인간성이나 학살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분명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생각보다 술술 잘 넘어간다. (그렇다고 모든 문장이 잘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