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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오랜 친구와 최대공배수

오랜 친구와 최대공배수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친구와 추억을 이야기하는 건 우리 사이의 최대 공약수를 구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라는 약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공약수가 된다. 우리는 각자 얼마나 큰 수이고 또 얼마나 많은 약수를 가지고 있을까. 도란히 앉아서 우리는 각자 하나씩 약수를 꺼내고, 공약수를 발견하면 다시 씹고 음미한다.

오랜 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이 아니고서는 만나러 가기가 겁나는 요즘. 그래도 친구를 만났다. 지난 번 봤을 때가 언제인지부터 가늠한 다음, 우리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요즘 하는 일은 어떤지, 아픈 데는 없는지, 부모님들은 잘 계신지, 아이들은 어떤지. 정작 ‘나에 대한 이야기’기 아니지만 모두 내 이야기다. 남편으로, 아빠로, 아들로, 직장인으로 역할은 우리의 삶을 촘촘히 엮어내고 있다. 오늘은 여자동기들 이름을 꼽아봤다. 던진 것을 잊고 갔다가 건져 올리는 낚시찌처럼, 친구들의 이름은 친근하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이제는 철없던 대학생에서 철없는 중년인체로 보내는 잠시간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각자 일상을 살아가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가려는 노력만큼은 진지하다. 어릴 때 모르던 문제들에 대해서 여전히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대화의 끝은 자연스럽게, 코로나가 끝나면 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이제 마치 이 주제는 블랙홀과 같아서 모든 시간과 공간을 빨아들이고, 과연 ‘끝나기는 할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수능이 끝나면’, ‘군생활 끝나면’ 같은 가정은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이었다. 아득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 아득함도 샘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상하고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아이를 집에 두고 외출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려서, 코로나가 끝나면 가까운 나라로 우리끼리 여행이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치 복권 당첨되면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실없는 상상을 하듯, 우리가 같이 여행가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 지, 무엇을 하는 게 좋을 지 생각했다.

약수로만 끝나는 관계라도 우려먹고 지져먹고 추억만 먹어도 견딜만 하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배수같은 사이를 꿈꾸고 있다. 더 많은 이야기로 우리 삶을 채우고, 그 삶에 우리가 서로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면 한다. 최대 배수라니. 우리 늙고 늙을 때까지 추억을 천천히 띄엄띄엄 쌓아갈 수 있을까? 우리 유한한 삶에 최소공배수가 아니라, 최대공배수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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