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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엄마와 코로나

엄마가 싸준 음식 중 일부 

 

엄마와 앉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 앉았다. 지난 연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추석 때에도 부산에 오지 않았다. 작년 코로나가 본격화되고 나서 부산에 온 적이 있던가 싶다. 정말, 거의 없다.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설 연휴가 될 것 같고, 그때에도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오늘은 부산에 왔다. 나 혼자서 차를 몰고 왔고, 필요한 걸 사려고 들렀던 롯데마트에서, 커피숍에서는 당연히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왔으니 좀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도착해서 조금 이야기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진주로 돌아왔다. 

만난 건 오랜만이지만, 전화통화도 화상통화가 가끔 하기는 했다. 그래도 화상통화가 '만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오늘 또 알게 된다. 밀린 이야기가 많아서 아무 것나 붙잡고 이야기해도 할 이야기가 많다. 반찬으로 무얼 싸줄까 묻고,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엄마는 물었다. 쌀 한 포대를 사두었고, 강정, 누룽지를 준비했고, 갓김치, 김장김치, 돼지수육, 콩자반, 쥐포 무침도 미리 준비해뒀다. 식용유, 햄, 비누, 치약. 나는 작은 점빵을 털어가는 것처럼 바리바리 싸들었다. 

아빠는 작년에 갑자기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낮부터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고. 그러다가 7월부터는 술을 완전히 끊기로 했단다. 글로 쓰니 술을 마신 일을 걱정할 틈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나는 아빠 얼굴 본지도 참으로 오래 되었다. 거의 1년 동안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부모님은 기다리지 않고 한 해를 살고, 그만큼 나이 들어가신다. 아무튼 아빠가 술을 안 먹게 된 것은 다행이다. 

엄마의 최고의 낙은 등산모임인데, 이제는 등산모임도 없다고 한다. 작년 가을에 거창 출렁다리에 다녀온 게 끝이라고. 이제는 동네 뒷산도 잘 가지 않는단다. 그 사이사이, 부산에서의 확진자 상황이나 접촉자를 찾는 문자가 내 핸드폰으로 쏟아진다. 진주에서 부산으로 100킬로 움직였는데, 용케 알고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지역이 바뀌고 받는 문자는 해외여행 갈 때였는데. 문제가 생기면 대사관으로 연락하라는 둥. 그런 문자는 이제 오랫동안 구경하기 힘들겠지? 날씨가 추워지기도 했지만, 등산도 하지 않으니 가끔 밖을 걷기만 한다고 한다. 그래, 그 정도도 충분히 운동이 되기는 하겠다. 재미는 빼야 하지만. 

엄마 집에 들르기 전에 롯데마트로 갔다. 혹시 직접 가서 사기 불편한 게 있으면 사다 드리려고. 세탁기에 쓰는 세제가 필요하데서 그것도 본다. 진주에는 롯데마트가 없어서, 오랜만의 롯데마트다. 롯데마트에는 '토이저러스'가 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많다.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을 위해서 깜짝 선물을 사기로 했다. 요즘 플레이도우를 자주 가지고 노는 딸에게는 '플레이도우용 면발 뽑는 기계'를 샀다. 또 플라스틱으로 된 네일 스티커. 아들을 위해서는 쉽게 조립할 수 있는 유선조종 탱크와 늘 좋아하는 토미카. 나중에 집으로 와서는 선물을 안기며 할머니가 사주신 거라고 했더니 아들은 당장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늘 용돈만 오가다 보니 뭘 받은 건지, 뭘 준 건지가 기억도 안 나고 선물을 주고받았다는 기분도 없는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 때도 엄마, 아빠에게서 아이들 선물 겸해서 돈을 입금받았는데, 바로 '저금'하기는 했지만, 그게 선물은 아닌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구입. 

엄마 집을 둘러보니 바뀐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베란다를 차지하는 여러가지 식물들이 더 자라 있고 몇몇은 꽃도 폈다. 오래된 아파트인데, 엘리베이터가 완전 새것으로 바뀌어서 좋았다. 엄마, 아빠가 등산용 옷이랑 가방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는 작은 방에는 못 보던 플라스틱 욕조가 있다. 누나가 사줬다고. 반신욕 하고 싶을 때 화장실에 펼치고 쓸 수 있다는 데 색깔도 만듦새도 좋아 보였다. 그런 게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도 좋을 텐데. 나는 지난 엄마 생일 때에도 그냥 돈만 보냈었다. 아무튼, 뭐든 말할 상대인 누나가 있으니 엄마가 편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할머니 빈소에 가셨단다. 가끔 가신다고. 오랜만에 볼 수 있었는 데, 내가 너무 갑자기 들이닥친 바람에 고모와 이미 약속을 해둔 아빠는 할머니를 뵈러 가야 했다. 만나면, 술 끊기를 잘 하셨소라고 말해 드리려고 했는데. 

짐을 싸서 차로 옮기느라 세 번을 왔다갔다 했다. 엄마는 또 뭐 싸줄 게 없는지 살피고, 나는 재차 조금씩만 넣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설 연휴가 되면 나 혼자라도 또 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밥도 안 먹고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어제 독서모임 하다가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맞을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겁이 좀 난다고 한다. 아빠도 그렇다고. 지난 해 독감 예방 접종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접종 후 사망하는 사고가 있으니 독감 예방접종=사망원인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의 이상 증상에 대한 소문도 있고 미국에서 사례도 가끔 나오니 불안하긴 하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통계적으로 보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이렇게 되었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더 내게 와 닿는 사실이 된다. 미국의 경우, 접종을 시작했으나 속도가 너무 늦어서 걱정이라는데, 속도를 올리더라도 70~80%까지 접종이 될까?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사정이 나을 거라고 기대는 하지만, '백신 접종을 받아야 해'라는 여론을 강력하게 만들어 내는 데 많은 공이 필요할 것 같다. 엄마에게 집단면역이 되려면 사람들이 3명 중 2명 넘게 접종을 해야 하고, 그래야 내가 걸릴 일도 없고, 혹시 내가 걸려서 다른 사람에게 옮길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이야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이해가 된다고 불안이 사라질까. 

1시가 조금 지나 문 앞에서 서서, 따라나오려는 엄마에게 나오지 말라고 말하고, 엄마를 꼭 안아줬다. 사춘기 이후로 아마 처음 엄마를 안아준 게 아닐까. 아니, 엄마에게 '안긴다'는 시기를 지나고서 처음 내가 엄마를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도 엄마를 처음 안아준 게 아닌가 싶다. 날짜 따위는 잘 기억하지 않는 나라 엄마를 작년에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늘 엄마가, 아빠가 보고 싶었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하루하루 보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이 늘고 있다. 엄마와 아빠와 내가 공유할 수 있었을 시간들이 무수히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가 없던 세상에서도 우리는 과거의 어떤 시간으로도 돌아갈 수는 없었다. 코로나는 우리가 만나고 손을 잡고 안아줄 수 있는 기회를 위협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 되었듯 직접 보는 이만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방법을 찾지 않으면 그냥 버려질 시간이 너무 많다. 앞으로의 시간은 더 부모님 가까이에서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