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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어린이가 아니게 되는 때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걸까? 오늘은 ‘공상’이 멈추는 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제일 잘 가지고 장난감은 두 가지입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둘 제가 사모았던 토미카(일본 토미카에서 만든 작은 자동차)와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받은 고무인형입니다. (무려 미국아마존에서 들어온 제품)

토미카를 가지고는 경주도 하고 주차도 합니다. 오래된 놀이매트에는 아들이 그려둔 도로가 빡빡하게 차있습니다. 신호도 있고 안전지대도 있습니다. 놀이매트가 없어도 양 손에 차를 한 대씩 들고 경주하고 하고 싸움도 하고 놉니다.

오늘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들 방에 가서 뭐하고 놀고 있나 봤습니다.

기사들 시리즈인 저 고무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네요. 뭐하며 놀고 있냐니 기사 둘이 싸운답니다. 올해 4학년이 되는 아들은 자주 저렇게 놀고 하루 20분 정도는 꼭 저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아들 방을 나오는데, 저도 어릴 적에 저렇게 놀았던 기억이 나더군요. 고무인형도 있었고 작은 플레이모빌도 있었습니다. 레고 비슷한 블럭으로 만든 장난감도 있었습니다. 제일 좋아했던 것은 뒤로 당기면 앞으로 나아가는 아톰 로봇이었습니다. 한 손에 딱 잡힐 만큼 작아서 가지고 놀기에 좋았습니다.

그렇게 놀때는 혼자서 우주여행을 하기도 하고, 내가 만화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초능력이 있을거라고 ‘진짜’ 믿으면서 오만가지 상상을 했습니다. 외계인이 침입한다거나, 지구에 엄청난 재난이 닥친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고 세상을 구할지 상상하고는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데에는 머리를 쓰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공상이 끝나면서 이미 ‘어린이’ 시기를 벗어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익히게 되면서 그간 공상했던 것들에서 흥미를 잃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왕자를 읽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그린 저자에게, 어른들은 수학이나 지리학 따위에나 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저는 애초에 ‘쓸모’가 모든 공부나 활동에 대한 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더 쓸모있는 지는 내가 정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쓸모’만 생각하면 늘 끌려 다니게 됩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결국 ‘사회화’되고, 그 사회화라는 것은 다른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회화도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힘이 중요합니다.

이미 ‘어린이’ 시절을 모두 벗어났고 도아갈 수 없지만, 아직 공상할 수 있는 대상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돈되는 일을 하느라 머리를 써서 그런가 저녁이 되기도 전에 허기가 지더군요. 저녁을 좀 급하게 많이 먹고, 딸이랑 같이 사온 바나나맛 우유까지 하나 먹었습니다. 먹을 땐 좋았는데, 속이 불편합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고 앉아 있었더니 목덜미 뒤도 너무 피곤합니다.

추워진다는 소식을 들어서 옷을 두툼하게 입고 털모자를 한 손에 끼고, 아내가 문 앞에 모아둔 재활용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걸으러 나갔습니다. 별을 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어 호호 따순 바람을 불어가며 사진으로 몇 장남겼습니다.

별을 보고 또 별 생각없이 걸어서 그런지 머리가 좀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공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는데, 이제는 도저히 지구를 지킨다거나 하는 상상은 할 수가 없네요. 이야기를 지어내 보는 것은 어떤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에 비해서 이제는 디테일에 강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동안 배운 ‘쓸모있는 지식’들을 내 ‘공상’을 살찌우는 데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결국 ‘사실’인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쓰지 못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기억한 내용을 쓰면 누군가 상처받거나, 누군가 비난 받을 지도 모릅니다. 저자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있죠. 그러니 내가 겪은 것과 내가 상상한 것, 그리고 내가 알게되고 배운 ‘쓸모있는 지식’들을 한 그릇에 붓고 섞으면 되지 않을까요. 오븐에 굽듯 컴퓨터 자판으로 구워내면, 모양도 향도 색깔도 조금은 달라져, 맛도 느낌도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데, 아직은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더 솔직하게 쓰고 싶다면 결국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책이 되거나, 팔릴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지금 쓰는 에세이도 책이 되거나 팔리는 글은 아니니까. 그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니까.

그럼 내일은 소설을 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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