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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Old Survivor는 500년을 살아남았나?

Old Survivor : 무용함의 유용함

how to do nothing

Attention Economy(이걸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나 모르겠다.)은 사람들의 주의, 집중, 관심을 구매의 대상으로 담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대부분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그렇다. 우리는 페이스북을 쓰면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그 플랫폼을 만든 사람은 돈을 번다. 아주 많은 돈을 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우리는 사용자 user라고 불린다. 우리는 그저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에게 고객은 광고주이다. 그들은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광고)의 편의를 위해서 UI(User Interface)를 개선한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돈만 버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더 많은 시간 동안 우리의 관심을 그들의 플랫폼 안에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조작이나 실험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이 Attention Economy에서 우리는 지킬 것인가에 대한 책이 이제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중 한 권인 How To Do Nothing을 다시 읽고 있다. 자주 그런 것처럼, 새롭다. 한 문장씩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제텔케스텐 방식으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책의 초반부에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Oakland Hills에 있는 500살쯤 된 redwood가 있다. 그 나무의 이름이 Old Survivor이다. Grandfather Tree라고도 불린다. 1845년부터 많은 redwood가 목재로 사용되기 위해 잘려 나간다. 하지만, Old Survivor는 살아남는다. 아주 비탈진 곳에 있어서 톱을 들고 자르러 가기도 어려웠고, 모양이 곧지 못해서 목재로의 가치도 조금 떨어졌다. 그래서 다른 동족들이 모두 잘려 나갈 때 이 나무는 살 수 있었다.

old survivor poster

저자는 곧장 장자무용지용 일화를 가지고 온다. 목수가 이상한 모양의 나무를 보며, 참으로 쓸모 없다고 말하는데, 그의 꿈에 그 나무가 나온다.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분명 잘려 나가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한다. 나무의 운명이란 결국 ‘잠재적인 목재’로서의 가치만 있다. 사람에게 유용하다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지나가면서 보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꽃 한송이,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오랜 기간 인간을 스스로 보존하고 더 나아가 동족의 번영을 위해서 주변 모든 사물을 조작해 왔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여전히 나무를, 강을 유용함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유용함에 대한 판단이 꼭 자연물을 비롯한 사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나?’, ‘내가 만든 쓰레기는 쓸모없으니 얼른 어디로든 버리는 게 좋다’, ‘수능에도 나오지 않으니 이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혼자 방구석에서 지어낸 소설은 읽어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보다 월급도 적고 지위도 낮은 저 사람, 그냥 모르는 게 낫다.’

유용함은 곧장 얼마나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라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슈퍼컴퓨터를 가지고도 내일의 정확한 날씨 예측이 어렵다. 우리 한 개인의 삶은 내일의 날씨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가. 복잡도가 높은데도, 이득이 되는 일이 결국 이득이 된다라는 명확하지만 무용한 논리가 우리에게는 참 가깝다.

아무 쓸모 없어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자기가 누릴 바를 꿋꿋이 누리고 있는 한 나무에 대한 다큐를 본다. 나는 여러 모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지만, 남의 쓸모에 응하려고 살아서는 안되겠다. 언제나 그게 헷갈리지만, 남의 기대와 요구가 나의 버팀목인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고, 꼭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딱 느낌이 그렇다. 저 Old Survivor를 보라.

https://vimeo.com/287739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