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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학급이야기

안개와 반장선거

출근길 안개

요즘 내게 가장 힘이 되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출퇴근 시간이란 그저 한 점(집)에서 다른 한 점(일터)로 이동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 시간은 짧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는 꽤 긴 여정이 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자전거를 타고 1분에 80번 정도 페달링을 하는 내 몸은 바쁘고 빠르다. 그럴리 없는데, 차를 타고 갈 때보다 내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러서 그 사이 생각도 많이 할 수 있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오래 보낼 수도 있다.

강을 끼도 달려서 그런지, 일교차가 심한 날이 계속되어서 그런지 짙은 안개를 자주 본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안개를 맞는다. 털 장갑 위에 소복이 물방울이 안고, 내 속눈썹에 잔잔히 자리를 잡는다. 안개는 애초에 보는 게 아니라 맞는 것이었던 거다. 너무 멀리에서 보기만 하니, 안개가 처럼 느껴졌는데, 안개 속을 달리니 안개는 물체임을 알게 된다. 공기를 가로막은 안개 덕분에 저 멀리 사물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는 해를 가리고, 크레인을 가리고, 건물들을 숨겼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왜 안개에 비유했는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반장선거 학생일 때는 반장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는 반장이나 부반장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예전과는 역할이나 비중이 좀 달라져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생 때에는 반장이란 전제적인 담임 선생님 보좌해주는 역할일 뿐이었던 것 같다. 담임이 없으면, 담임 대신 감시자의 역할을 할 때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뭐랄까.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직접 받아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아직 학생들은 어른과 대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걸 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사이에 반장이 있다. 반장이니까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그러니, 누가 반장이 되느냐는 학생들에게도 담임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경우, 담임교사의 수업이 많지도 않아서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는 시간은 조종례 시간이 거의 유일하고, 그 시간은 정말 너무나 짧기만 하다.

다행히 여러 학생이 반장후보로 나와 주었다. 반장이나 부반장을 따로 나누어 입후보 받을 수도 있지만, 반장이나 부반장이나 사실 하는 역할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부반장이 반장을 도와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여러 명이 후보라 반장이 선출될 경우 학생수의 절반의 지지도 못 얻으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고, 후보자 중 두 명의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선출 완료. 개학할 때부터 반장이나 부반장에 입후보할 사람들은 미리 준비하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서로 더 알지 못하고 반장과 부반장을 뽑아야 해서 안타깝기는 했다.

아깝게 낙선한 학생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박수도 쳤다. 요즘에는 아주 가끔 생기부 기록용으로 반장을 하려는 학생도 있다는데, 우리 반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누가 반장이 되어도 다들 열심히 해줄 것 같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반장도 부반장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모르지만, 일단 급한 것부터 알려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반복되는 데, 특히나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 우리반 학생들이 모두 제 시간에 일어나서 공부할 준비를 하고, 서로 응원하면 공부할 방법을 찾자는 게 내 생각이다. 온라인 수업 기간에는 특히나 별로 전달할 내용도 없으니, 내가 반드시 조례나 종례를 하지는 않아도 된다.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서 즐거운 반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하려고 했던 것보다 시간이 좀 늦어졌지만, 학부모님들에게 보낼 편지도 오늘 마무리를 했다. 어떤 생각으로 우리 반을 이끌려고 하는지, 부모님들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간략히 썼다. 그리고 학생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할 게 있다면 말씀해주십사 부탁도 드렸다. 편지를 내일 학생들 편으로 보내고, 회신을 받을 생각이다.

덧.
바쁜 가운데, 이렇게 매일 글을 쓰는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다. 이미 100일 넘게 매일 글을 써오고 있다. 100일 해봐야 고작 3달이다. 이렇게 쓸 수 있다면 1000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잘 쓰기 위한 훈련이라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런 목표도 없다. 쓰는 행위 자체가 보상이다. 쓰는 것 자체가 힘을 준다. 글요일 멤버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