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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학급이야기

마스크 너머 보기

어제 학생들이 두고 간 장미를 모두 모았다

오늘 오전에는 어제 학생들은 받고 나서 두고 간 장미들을 급히 구한 꿀병에 꽂았습니다. 어제 학생들에게 장미를 나눠주었는데, 굳이 집에까지 안 가지고 가고 싶은 사람도 있겠다고 싶었고 그런 사람은 두고 가면 모아서 교실에 두겠다고 말했습니다. 들고 간 학생들도 있고 두고 간 학생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버리기도 했다는데, 우리 반 학생들은 적어도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제가 개학이니 오늘이 실제로 첫 등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명은 등교 시간을 조금 넘겨서 등교하기도 했지만, 일찍 와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지난해부터 생각해온 던 것 중 하나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때마침 어제 우리 반 학생들 중 몇 명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EIS에 생활기록부용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학생들은 파일을 저에게 주면 됩니다. 따로 사진관에 가서 찍을 필요까지는 없어서 원하는 학생들은 제가 휴대폰으로 그냥 찍겠다고 했고, 한 10명 정도는 그렇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스크를 잠시 벗고 사진을 찍는데, 실물을 확인하는 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게 되면서, 어느덧 우리는 ‘가린 얼굴’에 익숙해졌습니다. 덕분에 여성 화장품 소비가 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자 선생님들의 경우에도 일단 마스크 안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편한 점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 만난 선생님들의 얼굴도 학생들의 얼굴도 기억해야 하는데, 마스크 위로만 보고 기억을 합니다. 이름과 얼굴을 매칭 시켜서 기억을 해야 하는데, 작년에는 마스크 쓴 모습만으로는 기억이 어렵더군요. 그렇게 기억하다가 어느 순간(예를 들면 급식소 같은 곳에서),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을 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급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수업을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보는 저도 그렇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도 제가 보이지 않는 부분 채워 넣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 보이는 부분-코, 입, 턱-을 상상으로 채우다 보니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보면 다른 얼굴이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사진을 찍으면서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오늘 집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온 학생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이 가장 착하고 이쁘고 순해 보일 모습’을 상상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상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인상이란 것은 굉장히 저돌적입니다. 너무나 강해서, 별다른 정보 없이 어떤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게 되기도 합니다. 마스크를 쓴 학생들을 보면서 오로지 그 학생들의 눈을 보니까 학생들의 외모에 시선을 뺏기는 일이 적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다른 사람의 인상으로 그 사람의 성향까지 예측하려고 합니다. 교사인 저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너무 파마가 심한 머리, 너무 짧은 머리, 너무 색조가 짙은 화장, 아래로만 처진 입술. 나이 40이 되면 자기 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했던가요? 하지만, 우리는 실컷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만 그 원칙을 적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더 광범위하게 거침없이.

나에게 친절할지, 아니면 나에게 공격적 일지를 판단하기 위한 우리의 생존본능이 개입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두운 골목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고 있는 무리들을 피해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별다른 행동이 없는데도 그 생김새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후의 우리의 판단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마스크는 우리에게 갑갑함을 주기는 하지만, 섣불리 내 외모를 들키지 않고, 그래서 평가받지 않을 수 있게 해주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스크 뒤에 자신의 표정이나 감정도 조금 숨길 수 있다면,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편안함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 학교 복도가 쉬는 시간만 되면 왁자지껄합니다. 저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혹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 학생들이 귀엽기만 합니다. 올해 꼭 제대로 실천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먼저 인사하기입니다. 오랫동안 먼저 인사받아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지난 시절의 미숙한 저를 도와준 많은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학생들을 봐서라도 올해는 좀 더 나아져야 합니다.

학생들도 저를 보면서, 마스크 넘어 저를 보면서, 실제보다 더 나은 모습을 상상해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