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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아이는 어떻게 어른들을 그렇게 빠르게 용서할 수 있나?

보석 같은 내 딸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 화를 내고 돌아서서, 그 화가 풀리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다가, 풀어지는 데 얼마나 걸리나. 화가 난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반나절 넘게 걸린다. 섭섭한 마음이 풀어지는 데,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은 강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이들이 부모에게만 그러는 거라 생각했다. 빠르게 용서하고 다시 부모에게 안기는 것은 온전히 부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를 용서한다기 보다는, 부모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약자라서 그런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강하고, 그래서 부모를 용서할 수 있다. 엄마, 아빠에게 토라졌다가도 금새 살랑살랑 꽃처럼 웃을 수가 있다. 그러니 어른들은 아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가 도대체 왜 저럴까

아이가 도대체 왜 저럴까 생각한다면, 스스로에게 먼저 되물어 보아야 한다. 어른인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는가. 어른의 기준으로 아이를 대하면서, 모자란 점만 찾아 지적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아이를 놓아주지 않고 용서하지도 않는다. 칭찬도 하고, 벌도 줄 수 있는 권력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아침

엄마랑 머리를 묶던 딸이 갑자기 시무룩하다. 엄마가 묻는 말에 답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가야 했고, 나는 딸 뒤에 앉았다. 딸의 의자를 돌려가며 회전목마를 타면 흘러나올 것 같은 노래를 허밍한다. 웃어버려서 딸은 마음이 풀려 버렸다. 어떻게 머리를 하고 싶은지 듣고, 머리를 묶어 준다. 너무 오랜만에 딸의 머리를 묶다 보니, 매일 어떻게 머리를 묶어서 보낼까 고민하던 때가 떠올라 나는 많이 그립다. 그리고 왜 엄마의 말에 답을 안 했는지, 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머리를 쓸어 넘겨주다가 좀 날카로운 손톱으로 딸의 귀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딸의 입장만 들으니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랬다. 엄마에게 말해야 겠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 엄마한테 말하지마. 비밀.
  • 아니, 엄마 말도 들어봐야지. 엄마가 알면 미안해 할 지도 모르고..
  • 아니, 엄마한테 말하지마. 사과 받고 싶지 않아.

사과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은 어디서 듣고 배운 것일까. 아이가 언어를 말하는 것을 보면, 언어 구사란 너무나 독창적인 과정이구나 싶어서 다시 놀라게 된다. 딸은 엄마가 자기에게 사과하는 상황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쉽게 용서한다

엄마와 책도 읽고 밥도 먹고 그러면서 아침에 아팠던 이야기는 하지 않는 딸. 보석같은 딸을 보고 있으니, 내 아이들은 내게 과분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이렇게 더디 어른이 되는데, 아이들은 너무 아름답다. 아이들에 어울리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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