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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아빠의 퇴원과 한상 차림

엄마는 아주 한 상을 차렸다. 봄동, 파래무침, 콩잎,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아빠가 좋아하는 고기. 병원에서 흰쌀밥만 먹었다며 아빠는 잡곡밥이다. 11월 26일에 사고를 당하고 입원했다가 거의 세 달을 병원에서 보내고 아빠가 오늘 퇴원했다.

엄마가 차린 밥상

다행히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퇴원 시간에 맞춰 가서 퇴원 수속도 도와주고 내 차에 태워서 부산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도 먹고.

세 달을 지내면서 아빠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발가락을 잃은 게 제일 크지만, 거기에는 더 천천히 적응을 해야 한다. 양말을 신고도 작은 아빠의 오른발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은 아닌데, 아빠의 작아진 발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발이 남아 있어서 어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목까지 잘라내야 할 수 있다고 처음 의사에게 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상태는 모두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아빠는 집을 한 번 돌아보고, 자연스럽게 티비를 켜고 앉았다.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다 꺼내지는 않았다. 적응할 것들이 많다. 당장 담배 피우러 나가려고 해도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다. 아직은 오른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있고, 그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다. 담배는 싫지만, 그래도 담배를 피는 바람에 무조건 하루에 몇 번은 밖으로 걸어나갈 테니 그건 좋은 일이다.

병원이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고 아빠는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한 명 빼고는 아빠를 보러 갈 수도 없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할 수도 없었다. 매일 출근하고 늘 사람들을 만나던 아빠였으니, 갇힌 생활이 괴롭기만 했음에 틀림없다. 아빠는 퇴원 날짜를 받아놓고 더 조바심을 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무사히 퇴원했다. 매주 세 번씩 재활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어느새 추운 겨울은 다 지나가서 병원까기 가는 길이 시리고 춥지는 않을 것이다.

아빠는 늘 건강하게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야 사람 구실한다 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살았다. 하고 싶던 세탁소를 열고는 세 번이나 주저 앉았을 때, 아파서 며칠 집에서 쉴 때, 아빠는 초췌하고 작아졌다. 그런 짜증은 속으로 사람을 곪게 하고, 가까운 엄마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사람에게 밥벌이란 일이란 무엇일까. 나의 효능감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식은 나가서 일하고 돈을 버는 일이 아닐까. 아빠는 그 일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살았다.

이제 아빠에게 돈을 벌기 위한 매일매일의 출근이란 없을 것 같다. 그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사라진 발가락에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크고 힘든 일은 아닐지.

어쨌거나 내 아빠는 강한 사람으로 사고와 이후 여러번의 수술과 사고로의 인한 마음의 상처와 병원 생활의 갑갑함까지 모두 이겨내고 있다. 무엇에든 자기 자신에게든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 아빠, 앞으로도 잘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