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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또 다른 학교 이야기

대접

엄중한(?) 시기이지만, 학교 워크숍을 다녀왔다. 열띤 논의를 벌이고 업무에 대한 협의를 하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만남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하고, 와중에 어떤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목표를 성취하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각자 떨어져 지내며 어떤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학교의 모든 시스템이 학생의 출석을 전제로 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학생의 출석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만큼 같은 공간에는 반드시 교사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우리는 여전히 *적당한 거리 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가능한한 거리 두기라는 전략을 취한다. 그렇게 되면 만남이 사라진다.

딥 워크(칼 뉴포트 저)에서 저자는 창의적인 협업이나 개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전문가들의 우연한 만남'과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는지속되는 시간'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전자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회의는 공식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창의성을 갉아먹을 수가 있는 반면에, 다양한 사적 만남 혹은 캐주얼한 조우는 기존의 업무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창의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이 기회를 많이 잃었다.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만남의 과정이나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교사가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지 방법을 찾아내고 공유했어야 했다.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해야 겠지만, 그 와중에 학교는 계속 돌아간다. 코로나 덕분에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됐었고,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일이 추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대화는 부족했고, 대화는 더 부족해졌다.

워크숍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서, 인간은 참으로 언어의 존재이고, 듣고 말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들 사이에서 늘 뜨거운 주제 중 하나가 소통인데, 그것만큼 뚜렷하게 모호한 개념도 없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소통을 더 넓게 깊게 가져갈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없다. "소통을 위해 경청하자."라는 문장은 말은 되지만, 목표나 실행방안이 될 수 없다.

35년간 차를 연구하고 차를 만들고 제자들을 양성했다는 분에게 차를 대접받았다. 떡차부터 시작해서, 감잎차, 청귤 홍차 등등. 나중에는 구분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사진으로 찍어두기 메모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대접받으니 참으로 내가 귀한 사람처럼 착각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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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엄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아야 된다 늘 생각하고 있어서, 우리는 자주 "무시당하는 경험"을 견뎌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막 대하고 있는 지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라는 말은 참으로 명확한 진리인 것 같지만, 그래서 그만큼 실천은 어렵다. 새 학년도를 기다리면서,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리고 나는 구체적인 방법을 상상하고 있다. 교사 독서모임을 해야겠다 생각하는 게 그 첫 번째다. 그리고 매일 혹은 일주일에 한 번, 회의가 아닌 상시적이지만 자유로운 만남의 시간을 기획해보고 싶다. 정해진 시간에 누구나 와서 시시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 차나 커피를 두고, 포츈 쿠키든 질문카드를 뽑든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모임, 가능하지 않을까.

실용성 없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사람들의 대화는 확장되고, 그만큼 서로의 관계는 깊어진다. 깊어지는 관계는 모든 것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과 협업의 가능성 아닐까.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감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