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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또 다른 학교 이야기

학교라는 공간이 문제가 아니야

페이트 칠 준비


학교는 년중 돌아간다. 오로지 방학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학교라는 공간은 휴식에 들어간다. 사람으로 붐비지 않는다고 해서,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방학은 쉬는 기간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도 공간은 새맞이를 한다. 부서진 팔걸이, 작은 실금, 더러워진 페이트, 낡은 창, 고장난 블라인드 등등. 사람이 사용하면 무엇이든 닳고, 누군가 챙기지 않으면 더러워 지고 위험해 진다.

학교 밖에서 목에 힘 좀 준다는 사람들은 학교가 감옥과 같은 구조라며 가끔 학교를 개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학교를 지을 때 무슨 생각으로 네모낳게 만들었을까.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 학교 건물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통로는 세 개로 중앙통로로는 학생들은 다니지 못한다. 중앙현관으로 들어가면 행정실(혹은 서무실)이 보이고, 그 옆으로 커다란 교장실이 있다. 중앙현관을 기준으로 반대편에는 보건실(혹은 양호실)이 있었다. 학교 뒷편이나 외부로 나가면 창고가 있고, 각종 학교 일을 돌보는 주무관님(주사님)이 있었다. 매점이 있고, 밀대 걸레를 씻을 수 있는 곳이 있기도 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개의 창고가 있기도 했다.

2층에는 교무실이다. 대개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 모이는 교무실이라 거의 한 층을 다 차지하거나, 적어도 복도의 절반을 차지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에는 교무실 안에서 재털이를 볼 수 있었고, 교감선생님이 피우다가 둔 담배가 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위층으로는 학생들의 공간이다. 교무실에서 제일 가까운 층이 고학년의 교실. 고3, 고2, 고1 순이다. 고3의 배려는 극진하다라고 할까 극성이라고 할까. 선풍기도 에어컨도 컴퓨터도 고3 교실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학교가 해주지 않으면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선풍기를 넣기도 했다.

화장실은 널찍하다. 화장실은 문짝은 늘 고장나 있기 일 수였고, 그래서 볼 일을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장실 타일 바닥은 늘 더러웠다. 학교를 청소하는 외부 인력은 없었고, 학생들이 모든 곳을 청소했다. 어릴 때부터 해와서 그런 것일까,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학교에 남거나 선생님에게 맞기라도 해서 그럴까, 청소 상태는 늘 괜찮은 편이었다. 잘못을 저지르면 두들겨 맞고 벌청소는 화장실이다. 화장실이란 공간은 무엇이든 버려지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제 대부분의 학교가 남녀공학이고, 남학생 화장실과 여학생 화장실은 당연히 분리되어 있다. 몰카범죄가 적발된 이후로 학교에는 몰카탐지기라는 것이 보급되었다. 한 달에 적어도 한번은 점검해야 한다. 학교 주요 출입구에는 CCTV가 있고, 숙직실에서 모든 화면을 확인할 수가 있다.

신축되는 학교가 아니라면 예전의 그 건물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냥 직사각형 단일 건물에 외부 체육관이 들어와 있거나, ㄱ자 건물형태다. 영어전용교실 사업, 과학중점학교 사업, 교과교실제 등등을 거치면서 학교는 건물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포맷을 다양하게 바꿔왔다. 이제 한 층에 모든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경우는 없다. 행정실과 교장실은 여전히 중앙통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학년교무실이라는 게 생겨서, 담임 선생님들은 학생들 교실 가까운 곳에 있다. 교과교실제를 하면서는 자기의 교과교실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재작년과 작년까지는 학생들의 이동 수업이 안되었기 때문에 교과교실제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여전히 고3교실이 지면에서 제일 가깝다. 고2, 고1 순이다. 이제는 특별실이라고 불리는 음악실, 과학실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교과교실이 있다. 학생들의 수가 줄었고, 남는 교실은 그 나름의 쓸모를 찾아갔다. 교실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한 해 적어도 두번 필터를 완전히 청소한다. 학교 건물내 화장실 정도는 늘 청소하시는 분이 있고, 학생들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실만 청소한다. 인권위에서 학생들을 동원해서 학교 건물을 청소하는 것은 반인권적이라고 했다. 그런가 아닌가에 대한 이론은 있겠지만, 그 발표 이후로 학생들은 청소시간에 자기가 사용하는 교실을 청소한다.


나는 학교의 건물이 감옥 같은 지 잘 모르겠다. 학생은 죄수가 아니고 교사는 간수가 아니다. 내가 학생이었던 시기, 학생들은 교사의 통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교사는 언제든 학생을 때릴 수 있었고 별다른 이유 없이 벌을 줄 수도 있었다. 학교 건물이 ㄱ자 형태라 그게 가능했던 게 아니다. 학교의 역할과 학생의 역할과 교사의 역할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변형되었다.

학교 건물이 더 아름다우면 분명 좋을 것 같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창의적인 공간 배치로 학교 안을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상상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값싸게 학교 건물을 만들도록 둔 게 누구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학교 라는 공간과 기능에 관심이 있는 지 의문스럽다. 학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많은 경우 ‘공부’, ‘성적’, ‘대입’을 생각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학교가 창의적일 필요가 있을까? 학교 공간에 대한 관심은 다시금 학교의 역할로 돌아간다. 학교의 역할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공간의 제약 따위는 넘어설 수 있지만, 학교의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제한된 생각이라는 틀은 정말 넘어서기 힘들다. 지금도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외부의 비판이 “학교에서 공부만 가르치면 되지.” 이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쳤던 적이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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