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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눈이 가끔 와야 추억이 되요

 

떨어지는 눈, 쌓인 눈을 처음 본 딸 

오늘 진주에 내린 눈은 얼마나 되었을까. 아침에 일어나 뉴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아들은 "진주에도 눈 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상도를 보니 진주까지 눈을 내려줄 것 같지 않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면서 나도 '눈 올 것 아닌데, 하늘은 왜 이리 회색 빛이람.' 하고 생각했다. 한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애기 손가락으로 뜯어낸 솜사탕만 할까. 제법 덩어리가 커서 떨어지기도 천천히 떨어진다. 아들은 휴대폰을 켜고 동영상을 찍는다. "여러분, 진주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딸은 뭐가 기분이 안 좋은지, 눈을 즐기지도 않고 아침 밥그릇만 붙들고 뿌루퉁해 있다. 나는 혹시나 눈이 계속 오면 장 보러 가기 곤란할 것 같아서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아내가 시킨 대로 장을 보러 간다. 눈이 계속 내리길 빌면서, 어른들이야 어떻게 되든, 아이들을 위해서 눈이 많이 쌓였으면 하고 바라면서. 

눈은 쌓이지는 않았지만, 땅을 한꺼풀 가리기는 했다. 장갑을 끼고 나가 살포시 곳곳에 내려앉은 눈을 손으로 쓸어 모았다. 눈사람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어쨌든 야구공 만한 눈덩이 두 개는 만들 수 있었다. 눈이 온 놀이터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눈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하루 같았다. 오로지 집에서 움츠리고 지내던 나날인데, 작은 선물은 받은 기분이었다. 

오늘 진주에 사는 아이들이 일기를 쓴다면 모두 눈 이야기 아닐까? 처음 본 아이가 많겠지. 또 눈이 내리면 좋겠다 바라는 아이들이 많겠지. 또 눈이 올 때를 대비해서 오늘 젖은 장갑을 잘 빨아서 말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행히도 완전히 눈으로 덮인 강원도에서 겨울 몇 날을 보낸 적도 있고, 비닐 부대에 볏짚을 넣고 비탈길에서 썰매를 탄 적도 있다. 부산에 살았지만, 눈싸움을 할 만큼 충분히 눈이 내린 적도 있었다. 뉴스를 보면 서울에는 그렇게 눈이 자주 내리던데, 어릴 때는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지금은 부러울 게 없지만, 그래도 가끔 눈이 전국에 좀 공평하게 뿌려주면 어떨까 택도 없는 상상을 한다. 

추억이란 자주 '기대하지 못했던 사건' 때문에 만들어지고는 한다. 기대하지 못했던 눈, 우연히 만난 사람, 대충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서 맛본 진미, 시간이나 때울까 해서 잡았는 데 놓치지 못하게 된 책, 상상도 못 할 만큼 겁이 났던 순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상황. 그 순간이 지속되는 시간이 얼마이던지 간에, 그 순간 일어나는 파도와 같은 감정 덕분에 우리는 짧은 순간도 길고 농도 있게 기억하게 된다. 

중요한 장면은 잘게 쪼갠다 

만화책을 보면, 중요한 순간은 더 여러컷으로 표현된다. 슛 하나를 한 컷으로 끝낼 수도, 10컷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추억이라 기억되는 순간들은 60 프레임, 120 프레임으로 찍어놓은 영상처럼 느리게 재생해도 선명하다. '기대치 못했던,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라면 모두 추억이 될까.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 아니라면 추억이 되겠지. 아직도 요즘도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해서 편안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더욱 자세히 기억하면 더욱 마음 아플 것 같은 일들이 기억 속에 희미한 것을 보면, 인간의 망각에 감사하게 된다. 너무 좋았던 일도 희미해진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기억에서 기쁨과 슬픔을 모두 간직하는 것보다는 기쁨과 슬픔은 약간 덜어내는 게 내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Algorithms to Live By: The Computer Science of Human Decisions) 이 있다. 컴퓨터 과학에서 얻은 통찰을 인간의 삶에 반영하거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쓴 책인데, 알고리즘 설명 부분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구석도 있다. 오늘 읽은 부분 중에 인간은 초기(어린 시절에)에는 '탐색'을 하고, 후기(노년 시절)에는 '이용'을 한다고 한다. 남은 인생의 시간을 생각하면 초기의 '탐색'과정이나 후기의 '이용'에 대한 집중은 굉장히 논리적일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재미있는 것만 좇는 것은 당연할뿐더러 필수적인 성향이라는 말이다. 노년에는 탐색으로 보내는 시간은 이제 아깝다. 그걸 누릴 시간이 점차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누리는 게 좋고, 그런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 

나 정도 나이에서는 탐색은 많이 줄어들 때이긴 한 것 같다. (그렇다고 탐색을 멈추진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숫자가 줄고, 그저 알던 사람과 더 깊이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상당부분 '탐색'은 정체기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이 좀 자라고 나면 다시 좀 돌아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기쁨과 슬픔으로 돌아와서, 기억하고 있는 기쁨과 슬픔이 좀 줄더라도 그것에 대해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무엇을 추억으로 남기고 무엇을 추억에서 버릴 지는 잠자는 사이 내 뇌에게 맡기기로 한다. 단,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내가 많은 부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잊더라도 내가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하는 게 사랑이다. 혼자 기억하면 혼자 더 사랑하는 거겠지. 그래도 좋다. 사랑은 꼭 주고받는 게 아니다. 더 사랑하면, 그 사랑을 더 누릴 수 있다. 남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사랑을 더 누리기 위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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