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책모임

8월 먼북소리 모임 '일상의 낱말들'

일상의 낱말들

참석자: 7명(이태, 정민, 박승, 정경, 구나, 이호, 김수*)
장소: 도시달팽이 2호
일시: 2023.8.18.(금) 19:00

오랜만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한 달에 한번 모임이라 한번 빠지면 두 세 달을 못 보게 되기도 한다. 덕분에 근황 이야기가 시간이 많이 들었다. 좀 안타깝고, 좀 위로하고 싶고, 그래도 서로 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시간이다.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공간이 많지 않다.

이 책에 대한 평은 모두 좋은 편이었으나, '에세이는 읽을 수가 없다.' 는 평을 해주신 한 분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모임을 위한 책을 정하면서 누구나 마음에 들고, 누구나 배울 게 있을 수는 없다. 모두가 별 말 없이 잘 되어 가는 모양새라도, 누군가 별 말 않고 참고 넘어가는 것일 수가 있다. 마음에 드는 구석만큼이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 얘기까지 하고 나야 잘 된 모임 같아서 나는 좋다. 비질을 하면서 쓸기 쉬운 넓은 공간만 훝고 가는 게 아니라 빗자루 끝만 닿는 구석까지 훔쳐 쓰는 느낌이라 좋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꼭 글을 썼으면 했다. 글을 쓸 시간 따위는 독서 모임 동안은 힘들다. 이것에 대해 써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못 했다. 저자들이 써 놓은 글을 보고, 우리 이야기를 더 꺼냈으면 했는데, 충분히 그러지 못해 아쉽다. 가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며, 나만의 이야기를 말하기 주저되는 때가 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상대가 갸우뚱하거나 시선의 초점이 흐려질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어차피 나의 이야기란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공감을 얻기 힘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책을 읽다가 몇 글자 써둔 게 있어 여기 옮겨둔다.

밥하면 부추김치, 약수와 아침밥

'밥하면 부추김치'는 혼자서 뒷산 약수터에 갔다가 앞선 큰물통들 때문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물 한병을 떠서 귀환한 여덟살 아이의 이야기다. 열세살 언니가 밥을 차리고 부추김치를 얹어 먹여줬다는데, 나도 한 입 지금 받아먹는 것 같이 배가 뜨뜻했다.

나도 약수를 뜨러 간 적이 있다. 늘 아빠와 함께였다.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고 나는 물통을 짊어져야 했다. 하나 혹은 두 개쯤. 아빠는 1.5리터 짜리 사이다병, 콜라병 6개를 배낭에 집어 넣었다. 그런 아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이 찼다. 누구보다 강한 아빠, 그때 내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작 뒷산이지만 아빠를 따라오르기도 힘들었고 운동화 바닥은 미끄럽기만 했다. 토요일 밤이 되면 아빠가 깨우도 계속 자는 척 해야지 생각도 했다. 빈 물통을 지고 오르면 내려오면서 칭찬해주는 아저씨들 덕분에 으쓱했다. 그 칭찬을 들으며, 아빠도 저 사람들처럼 나를 뿌듯해 하겠지 생각했다. 아이는 부모에게 늘 인정받고 싶다. 약수터에 오르면 발 아래로 세상이 보인다. 약수터 주변에 있는 사람만 깨어 있고 모두들 잠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면 나는 좀 더 거만해졌다. 중요한 사람이 된 것도 같았다. 그때도 지금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보다 나는 내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딱 그만큼 자랐다. 가족을 위해 약수를 뜨러 가지는 않지만, 해야 한다면 몇 번이고 산을 오를 것이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약수를 뜨러 산에 올라간 것일까. 주 6일 밥벌이를 위해 힘을 쓰고도 아빠는 어떻게 일요일에 또 산을 올랐을까.

약수를 들고 가지고 오면 동생은 곤히 자고 있다. 동생도 깨워서 데려 가야 하는데, 나는 샘이 났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던 된장찌개든, 감자조림이든, 볶음이든 반찬을 해냈겠지. 부엌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샤워를 하고 나는 노곤한 몸으로 밥을 먹었겠지. 그 밥 반찬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약수를 뜨고 내려오면 늘 꿀맛이었겠지. 그때의 아빠가 그립고 나는 그 모습을 마음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