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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모임

20221118(금) 인간은 기능하지 않는다

20221118(금) 인간은 기능하지 않는다

먼북소리

11월 책 "인간의 피안"

 

AI, 인간복제, 황우석, 감정, 이성, 논리, 공감, 인간, 가짜, 진짜, HER, 트렌센던츠,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람, 장소, 환대, 가을

SF소설이 주는 매력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에는 잠시 시간만 있으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공상을 하고는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공상이 많이 줄었다. 초등 5학년 우리 아들은 아직도 장난감 병정을 가지고 갖은 공상을 하며 놀이를 하는데, 나는 공상의 세계를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마치 크레마 빠진 에스프레소 같다랄까. 

이번에 같이 읽은 "인간의 피안"에서는 AI, 신인간, 로봇의 집단 지성체라 할 수 있는 만신전 등이 나온다. 이미 많은 시간 많은 사람들이 로봇의 발달, AI나 머신 러닝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우선 인간의 일자리부터) 위협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이 로봇을 만들고, AI를 만들고, 각종 컴퓨터 서비스에 들어가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면서도, 자신이 만든 것으로부터 위협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인간은 총을 만들었고, 자동차를 만들었고, 핵무기를 만들었다. 총에 죽고, 자동차에 죽고, 핵무기에 죽을 수 있다.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 뒤에 있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을 쉽게 잊을 수도 있다. 나는 적어도 AI를 만드는 것은 분명 인간이므로, AI의 실패 혹은 성공은 인간으로부터 기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두려움의 대상은 오로지 인간이다. 차를 조심하라는 것은 한낱 수사일 뿐이다. 차를 몰고 있는 저 부주의한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인간을 믿기도 하지만, 의심하기도 한다. 각자의 나약함이나 비일관성에 대한 관찰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도 그대로 투사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대량살상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기술 그 자체는 인간을 헤칠 수 없다.

먼북소리 인간의 피안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게 된다. 언뜻 보면 각기 다른 질문인 것 같고, 다시 보면 비슷한 질문인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감정과 이성은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감정은 외부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아도, 그 안에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가? 로봇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수 없을까? 복제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외형을 했다면, 인간으로 인정해야 할까? 인간의 완전히 스캔하면, 인간의 마음을 복제할 수 있을까?

이런 논의를 진행하려면, 마음이란 무엇이고, 생각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논의할 수밖에 없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참여하면서, 제대로 기록하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은 앞의 과정이 어려웠던 것보다 더 어렵다고 느낀다. 이 글에서 오로지 나의 시각에서 그 모임을 정리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 아쉽기까지 하다.

그간 가지고 있던 생각, 어제의 논의한 내용을 더 하면 대강 아래와 같다.

마음

인간의 마음이 어디 있는가? 아마도 몸에 있겠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하나의 세포라면, 세포마다 마음이 있다.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마음은 전체 마음의 축소판과도 같다. 하지만, 마음은 모두 연결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병렬연결이나 블록체인 방식에 가깝지 않을까. 몇 개의 혹은 몇 천 개의 세포가 죽더라도 마음은 기능한다. 마음은 물리적으로 세포에 기반하고 있으니, 몸이 나약해지면, 마음 또한 나약해진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란 격언은 진리다. 민주주의에서 사람들 개개의 의견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사람들이 '공의'를 가지는 것처럼, 각 세포에 내재한 마음들은 더 거대한 하나의 마음을 구성한다. 마음이 상처를 받거나 약해지면, 그 영향은 온전히 몸에 전해진다. '심장이 철컹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은 분명 실체를 가지고 있다.

마음이 없는 것 같더라도

마음은 이성과 감정을 합친 것이라 봐야겠다. 그 둘은 구분하려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둘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마음을 이성과 감정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다니엘 캐너 맨이 했던 것처럼 '생존을 위한 빠른 생각'과 '숙고'로 나누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나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상태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은 인간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 심한 외상으로 의식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여전히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의 한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의 경우에도 여전히 인간이다.

하지만, 마음은 내 몸 안에 있지만은 않고..

마음이 내 몸의 일부라면, 세포를 복제하듯 마음도 복제할 수 있다. 마치 밀가루 반죽과 앙금, 붕어빵 틀만 있으면 거의 비슷한 붕어빵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인간과 환경,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새로운 마음이 생긴다. 마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 전에, 그와 나눌 대화를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대화가 탄생한다. 그 대화는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나와 내 대화 상대의 것이기도 하다.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영원히 혼자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나의 마음이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 사람과 공유하는 어떤 것이라 할 만하다. 내 몸 안에 있는 마음, 내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마음. 두 번째 마음은 온전히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 이미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세상 모든 것과 관계 맺을 가능성을 가지는 만큼, 한 사람의 마음을 복제하려면, 세상 전체를 한 번에 복제해야 한다. 그것은 가능한가? 복제를 하려고 하는 제3의 존재조차, 이미 복제되는 대상과 관계를 맺게 되지 않는가. 복제를 하려는 제 3의 존재는 복제하는 과정에 자기 자신도 복제할 수 있는가? 없다.

인간은 기능적 존재가 아니다

나는 브롬톤이라는 자전거를 탄다. 관련 카페에서는 자기가 구입한 브롬톤의 부품을 바꾸어 가며, 자기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는 과정에 대해 쓰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 어떤 글에서 누군가 물었다. "이렇게 뜯어고쳤는데, 제 자전거를 브롬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자전거는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들의 집합이다. 기능상 필요 없는 부품은 자전거의 일부라기보다는 액세서리(라이트나 속도계 등)이다. 부품의 상당 부분을 다른 부품으로 바꾸게 되면, 그 자전거의 Originality는 손상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전거이기는 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인가? 인간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혹은 적어도 인간을 도구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러니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하거나, 자신이 인간이라도 주장하거나, 다수의 다른 인간에 의해 인간으로 인정받기만 한다면 인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더 다양한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인간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할 것이다.

인간적이다라는 말은 따뜻한 인간만 포용하는 것 같다

소설 속 인간 같은 로봇 혹은 복제인간은 *인간적이다. 내 과거의 진짜 엄마보다 더 온화하고 평온한 새로운 가짜 엄마. 복제된 인간을 내 엄마로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늘 복제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이야기할 때, 인간의 *밝은 면 혹은 긍정적인 성질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당한가 의문스럽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고 상처 주는 인간 혹은 행동은 세상에 넘친다. 인간적이다라는 말은 사랑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으며, 늘 괴로워하며 가끔 자기반성도 하는 인간을 나타내는 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적'이라는 표현이 오로지 '아름다운 인간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표현은 인간성을 모두 묘사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읽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만큼 놓친 부분이 있다. 고도의 컴퓨터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그 인간 세상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가 왜 인간의 지속을 위해 일해야 할까? 인간 따위는 사라지게 만들고, 더 깊고 광대한 데이터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컴퓨터에게는 재미난(?)일이 되지 않을까? 

 

인간이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 늘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만큼,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인간을 괜찮은 세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