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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모임

가장 어둡고 나야, 해가 뜰까

#1103 교사독서 첫번째 모임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에밀 시오랑)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1)이 독서 모임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왔는지, 혹은 왜 왔는지. 2)읽은 부분 중에서, 기억에 남거나, 전혀 이해되지 않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한 부분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에 대해 이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한 번 정도는 코멘트를 달기로 했습니다.

1)독서 모임에 온 이유 밝히기 

"선생님 덕분에, 때문에 오게 되었어요." 여러 선생님들의 이런 말씀을 들으니, 저는 부끄러워하며 웃다가 너무 좋아 울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두가지 표정 사이를 오가느라 제대로 웃지를 못했고, 울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그 자리에 기꺼이 와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와주실 것 같아서 제가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해받고, 이해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는데, 그저 저를 보고 와주셨다는 분들이 있어서, 저는 벌써 크게 이해받았습니다.

집에 책이 쌓여 가서, 편식이 심해서, 업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찾아서, 원해서 참여한 선생님들만 있는 자리라서, 맛있는 거 주니까... 등등의 이유로 같은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같이 또렷한 이유라 상쾌합니다. 원하던 것을 얻어갈 수 있는 모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얻어가고자 한다면 서로의 마음도 통째로 털어갈 수 있으리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증샷

2)읽은 것에 대해 생각나누기

중2적 내가 쓴 것 같다는 느낌부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까지, 이해나 절망이 아니라 몰라서 읽고 그래서 좋아서 읽게 된다는 평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13명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다소 극단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만큼, 이 책은 모인 사람들의 지평을 넓히는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훌륭하다 하겠습니다. 모두 쉽게 읽고, 이해된다, 공감된다 말할 수 있다면, 그 책으로는 나눌 이야기가 없습니다. 꺼내 놓는 게 비슷하면, 나눌 것도 없습니다.

아래는 우리가 오늘 대화하며 생각한 문제들입니다. 짧은 메모와 기억에 의지해서 추린 것들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 등장하는 '나'는 '저'가 아닙니다. 편의상 '나'라고 씁니다.

  • 천진난만함을 잃으면 우리는 소외된다. 천방지축이던 학생의 침착하고 진중한 눈빛을 보면서, 나는 천진난만함을 잃었다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 저자는 '아량없는 열광적 활동성보다는 이해심 많은 게으름이 더 좋다.' 고 했다. 내 게으름, 여유로움에 대해 자책한 적이 있는데, 작가의 말에서 내 여유로움에 대한 근거를 찾는다.
  • '일은 인간을 사물화'한다. '지나치게 왕성한 에너지'로 일하는 인간은 행복할 수는 없는가. 하지만, 노동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가? 저자는 한낯 한량은 아니었을까?
  • 어려서부터 "열심히"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 대해 내가 편견을 가져왔던 것은 아닐까.
  • '개인은 자신의 존재에 절대적 위상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결국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인간관계론을 한 줄로 요약한 것 같은 문장을 보면서 놀란다.
  • '내게 삶은 형벌이지만, 나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데, 나는 삶을 그만둔다는 데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안 했던 것일까? 그 생각만 한 저자가 몰랐다면, 삶의 의미나 죽음의 의미에 대해 또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내가 그리 못나고 모자란 것은 아니구나.
  • '사랑을 막 느끼기 시작하는 불안한 순간'이라니, 이 철학자와 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도 있구나.
  • 22번째 생일에 죽음 문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 저자의 삶은 어떠했을까? 왜 그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천착할 수 밖에 없었을까/
  • 책읽기는 내 나약한 근육을 찢어 발겨, 다시 재구성하여 새로운 근육을 만들어 내는 일과 같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나의 나락으로, 나를 잊는 순간으로, 자아라는 환상에서 나를 꺼내주는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차라리 혼자 읽기가 즐겁고, 모른채로 읽는 게 황홀하다. 나를 끝까지 끌어 내려, 내 본연의 모습을 잠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저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은 아프다"(에밀 시오랑), "불안의 서"(페르난도 패소아)를 읽기를 권한다.
  • 예쁘다와 아름답다는 구분하며, 에밀 시오랑이 이야기한 서정에 대해 생각한다. 서정의 객관화란 무엇이고,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까. 학생들에게 '예술'이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며 음악 첫 수업을 시작한다.
  • 번역가의 후기를 보건데, 이 작품의 번역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더 잘 번역되었다면, 조금 더 매력적인 책이 되지 않았을까.
  • '동정심의 오만함',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지는 동정과 연민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표피적이었던가 최근의 참사를 보며 생각한다. 표피에서만 잘 살고 있는 나. 나락과 심연을 관찰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때때로 자극이 된다.
  • 이 책의 제목 하나를 잡고 글을 써보자. 두 줄을 채우기도 어렵다 그리고 불가능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의 혹은 글을 쓰기 위한 고통은 고통 뿐인 고통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