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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투수는 볼을 던지는 연습을 할까?

투수는 볼을 던지는 연습을 할까

폼업 교체

한 지붕 세 가족이었다. 순돌이 아빠는 목소리가 크고, 자주 불만이 섞인 투로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일은 척척 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려고 해도 기억이 더 나지는 않는다. 예전에 동네에는 철물점이 하나씩은 있었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도,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우리 집에 폼업이 고장 났다.... 라지만, 그게 폼업인지 몰랐다. 세면대에 물 내려 가게 만들어 주는 버튼과 물이 빠져나가는 부분. 이 모두를 합쳐서 폼업이라고 한다. '폽업'이라고도 하나 보다.

절대 우리말 일리는 없으니, '폽업'이 맞고, 영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pop-up. 자동이든 수동이든 물이 빠지려면 그 부위(?)가 튀어 올라야 한다. 영어지만, 일본을 거쳐서 왔을 수도 있다. 오라이가 영어 all right에서 온 것을 아는가. 뭐, 지금은 '오라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사용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검색 끝에 폼업을 주문했다. 규격 때문에 잠깐 고민했지만, 규격은 통일되어 있는 것 같다. 다 쓴 물이 벽면으로 나가는지, 바닥으로 나가는지만 확인을 잘 하면 된다.

순돌이 아빠가 자주 투덜거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폼업이 고장나자 마자 나도 속으로 좀 투덜거렸다. 전구 갈기도 폼업 교체도 나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은 내 몫이다. 차를 세차하는 것도, 시기에 맞춰 소모품 교체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아내에게 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려고 해도 참 귀찮은 일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고,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도 불편하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르고 싶은 때가 있다. 아는 게 많아지면 해야 할 게 많아진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해서,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가끔 주변 사람이 컴퓨터나, 기기, 혹은 웹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나는 혼자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내가 건드리면 ... 짜잔... 전혀 문제없이 잘 작동한다. 무슨 기운이라도 비롯되는 사람처럼, 스르륵 다가가면 모드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 기대를 받고 있으면 편할 리가 없다. 폼업이 고장 나도 아내는 태평하다. 그쪽 화장실은 나만 쓰는 공간이다. 갑갑한 것도 나, 고쳐야 하는 것도 나.

렌치가 없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갔다. 다른 아파트에서는 재료만 준비하면 교체 해주기도 한다는데, 우리 아파트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부탁하는 게 싫고, 그래서 그냥 내가 하기로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한쪽 벽에는 자주 사용하는 공구가 매달려 있다. 그리고 자주 빌려주는지, 공구를 빌려가는 사람들이 쓴 장부가 있다. 기존에 설치된 폼업을 떼어 내는 데 필요한 렌치의 사이즈를 재보지 않고 간 덕분에, 나는 공구를 가지러만 세 번을 내려갔다. 결국에는 heavy duty라고 쓰여 있는, 제대로 된 대형 렌츠를 써서 폼업을 뜯어냈다. 이 아파트를 분양받고 처음 교체하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금이 간 화장실 타일도 내가 손볼 수 있으면 좋겠고, 가끔 깜빡이는 형광등도 좀 제대로 손보고 싶은데, 다 할 수는 없다. 다 하고 싶은 마음은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미 다 알고 있다면"이라는 조건이 성립할 때에만 실행가능한 마음이다. 다 알지 못하고 다 하지 못하지 다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고, 그래서 자주 우선순위를 두는 데 서툴렀으면, 어쩔 수 없이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줄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가수, 변호사, 선생님,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오래 전에 가수와 변호사와 과학자라는 직업은 포기했다.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스페인어와 일본어를 배우고, 매일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재봉틀로 내 자전거 가방을 만들고 싶지만, 모두 다 하지는 않는다. 우선 목록은 작성해 두고, 급하고 중요하거나,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집중'이다. 좋은 투수는 좀 느리더라도, 아주 빠르더라도, 좀 둘러가더라도 필요한 때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볼'을 던지는 연습을 할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분명 연습하겠지. 정해진 자세로 스트라이크에 공을 넣는 연습을 하고 나면, 자세는 유지하되 방향만 비틀면 볼이 된다. 나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인가. 공 던지는 연습은 오래 했지만, 늘 경기에 출전한 듯 던지지는 않는다. 스트라이크를 던진 적도 있겠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명확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폼업을 교체하고 나니 빠져야 하는 물이 빠진다. 물이 오로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나의 재능이나 노력도 한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물을 당기는 중력처럼, 나를 당기는 중력도 있지 않을까. 그게 무엇인지는 명명하기는 어렵지만, 묵직한 무언가 느껴질 때가 있다.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넣었을 때 느껴질 만한 꽉 찬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복기하며, 내 스트라이크 존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 교체한 폼업은 한 10년 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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