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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학급이야기

종업식날 읽어준 편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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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식이라 청소는 했지만, 다 정리되지 않은 교실. 다시 가서 정리하고 치울 건 치워야 한다. 내 자리도 정리해야 하고. 마음은 바쁘지만, 차근차근 일을 하기 힘든 시절이다. 오늘은 학생 한 명이 확진이 나오면서 졸업식을 보지 못하고, 급히 학생들을 보내야 했다. 편지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어처구니 없이 대충 마지막 날을 보낼 뻔 했다. 편지를 읽은터라, 너무 길지 않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길지 않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A4용지로 2장 반이었다. 이렇게 일단 여기도 올려둔다.


줌으로 아침 조례를 하고, 카톡으로 종례 사항 전달하면서, 이렇게 해서 아이들 얼굴이나 알아보고, 서로 가까워질 수는 있을까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전한 교실, 편안한 교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 라고 이야기했는데, 여러분들이 느끼기에는 어땠는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조용히 지켜보니, 1학기 초에 비하면 지금은 모두들 너무나 편해보이지만 말입니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면서 여러가지 부담을 갖게 됩니다. 당장 대학 입학 전 단계에서, 무엇이 될 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습니다. 공부는 잘 안되고, 성적표를 받으면 자책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중학교 시절이 정말 편하고 즐거웠었던 것 같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주었습니다. 23명으로 시작한 우리반이 23명인채로 한 학년을 마치게 되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자, 자기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세요.

상담을 해보니, 대개 성적 걱정을 하거나, 성적을 더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더군요. 오늘 이 시간은 내가 이야기하는 시간이니, 마지막으로 어떤 조언을 하는 게 좋을까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성적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성적을 올리려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돌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공할 수 있는 계획부터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이라는 아기를 키운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침에는 조심히 깨우고, 맛있는 밥을 대접하겠죠? 날씨에 맞춰 이쁜 옷을 준비할 겁니다. 점심 때에도 맛있으면 좋겠지만, 건강한 음식을 대접하겠죠. 아프거나 다치지 않도록 잘 돌볼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좋은 것들을 가르쳐 주고, 멋지고 훌륭한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아기가 이야기하면 두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고, 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질문 하겠죠. 밤이 되면 너무 늦기 전에 잘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겁니다. 일찍 잠들어야 몸이 자랍니다. 마음은 하루 동안의 소란을 가라앉히고, 새롭게 배운 것들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과 여러분 몸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마음과 몸의 건강을 챙길 때에야 비로서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습니다.

나도 노력중입니다. 되도록 11시전에 잠들려고 하고, 6시 이후로는 간식을 먹지 않습니다. 일해야 할 때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이제 계획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는 계획이 아닙니다. 일종의 선언은 될 수 있습니다만, 계획이 없어서는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좋은 습관을 기르려면, 아주 쉬운 단계를 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계측할 있는 목표를 말입니다. "매일 적어도 50분은 휴대폰 없이 책과 노트만 두고 공부를 하겠다"라는 계획을 세운다면 어떨까요?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재고, 50분을 채우면 하루치의 목표는 끝난겁니다. 거기서 공부를끝내도 되지만, 더 해도 됩니다. 더하는 만큼 으로 성공하는 겁니다. 계획했던 일을 완료하는 것은 성공 경험을 줍니다. 그 경험은 어떤 칭찬보다도 힘이 됩니다. 매일 여러분을 칭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세요.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하루에 반드시 하나의 블로그 글을 씁니다. 잠들기 전에 적어도 두 가지 일에 대해서 나를 칭찬하고 잠들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선생님은 어른이니까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어른은 20살이 되었다고, 30살이 되었다고, 40살이 되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을 직접하고, 그것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면 어른이 됩니다. 어린 나이에도 어른인 사람이 있고, 나이가 많은데도 어른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요즘에야 내가 좀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그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던히 애쓰는 가운데, 점점 어른이 됩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물론, 위 두 가지 원칙을 지키더라도 성적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는 게 덜 힘들어 질겁니다. :)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구요. 되도록 자전거를 타고 있고 환경을 위해서, 되도록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되도록 이야기를 듣고, 묻고, 오해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여러분에게 어떤 어른으로, 교사로, 담임으로 보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것을 보면, 내가 영 엉망으로 하지는 않았구나 생각합니다. 너무 늦게서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던 게 아쉽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상담 시간 같은 것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나간 시간이라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니, 다시 담임을 하게 되면 잊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사하면 반겨주고, 말하면 답해주고, 가끔은 먼저 말걸어줘서 고맙습니다. 단체사진 찍자고 할 때 군말없이 찍어주고, 청소하라고 하면 굼뜨기는 하지만 어쨌든 청소하고, 내고 싶지 않겠지만 휴대폰도 내줘서 고맙습니다. 우리 1학년 7반이라 고맙고, 한 해 동안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