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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제자리 걸음

양귀비꽃 내가 와서 봐주길 바라는 우리 동네 양귀비꽃

아침에 식빵, 점심 때는 파스타면을 사러 간 걸 빼면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 어딘가로 갈 수가 없었다. 음음. 이건 좋지 않은데. 매일 남아서 업무를 더 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지만, 주말마다 집에서 일을 더 해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니체는 나는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 라고 했다는 데, 그저 니체가 강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때마침 오늘 아침에는 일을 미루지 않는 방법이라는 짧은 영상을 봐서 그런가,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기 전에 일을 좀 더 해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일을 하기는 했으되 많이 하지는 못 했다. 그리고 유튜브나 보면서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주는 연휴 때문에 짧으니,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시험을 끝낸 나른함이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블로그에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나 한참을 생각했다. 딸은 이제 그림책 읽어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글밥이 많은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 책은 책 먹는 여우다. 글밥이 많다고는 하나, 그림도 돋보이는 책이다. 책을 읽고, 읽는 것보다 먹는 걸 더 좋아하는 여우가 몰래 책을 훔쳐 먹다 걸려서 감옥에 가게 되고, 거기서 먹을 책이 없어서 자신이 먹으려고 글을 쓴다. 간수가 그 책을 읽어보고 너무 재미가 있어서 책으로 만들기로 하고, 그때부터 여우는 자신이 쓴 책을 먹는 걸 특히 더 좋아한다. 여기서 책을 먹는다는 것은 읽는다의 은유인 것 같다. 이후로 여우는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수집하고 늘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당연히 책도 계속 먹는다. 그 여우가 먹은 책, 수집한 이야기는 모두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서 나온다.

어쩌면 꾸역꾸역 혹은 꾸준히, 혹은 가까스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좀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좀 더 생각을 잘 하거나, 좀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둘 다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만은 않아야지 생각한다. 내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더 생각하고, 더 읽어대야 한다. 언젠가는 건드리기만 하면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를 모두 글로 쓰지는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했던 것들을 다시 정리하거나, 이야기하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글로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멈추지 않는다면, 전진하고 있는 것이겠지. 제자리걸음이라도 걸음은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