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엄마, 내가 돌봐줄게.

세일병원 응급실

"아들, 아들 때문에 엄마가 더 힘낼게"
엄마는 내가 안아주자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힘내라고 말하며 엄마 등을 토닥였다. 힘껏 안아주고 힘내라고 했다.

서울에 계신 외할머니가 최근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지셨다. 폐에서부터 암이 시작된 것 같은데, 한 달 전에는 나이가 많으신 분이라 암도 진행이 빠르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엊그제부터는 의식을 잃고 호흡도 힘들어하신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어제인 금요일에 별 일이 없었다면 비행기를 타고 할머니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이야기 나누지 못해도 옆을 지키고 싶어서. 하지만, 큰일이 생겼고 엄마는 서울로 가지 못했다.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할까.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몇 번 받았지만, 그때마다 간이 졸아드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빠에게도 힘내라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도 힘을 내야 한다. 장모님이 돌아가실 지도 모르는데, 자기 몸부터 건사해야 하는 아빠의 기분은 또 어떨까.

엄마가 지정 보호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맡겨만 두고 집에서 편히 있을 수가 없다. 내 기분은 식어버린 돼지 고깃국처럼 불완전하게 굳어있다. 마음에 냄새가 있다면, 내 마음은 지금 상해 간다. 점심때 맞춰가서 엄마와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우리 가족도 돌봐야 하니 가는 시간이 늦어졌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 대강 전하기는 했지만, 아들은 내가 말하는 그 엄청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 모르고, 딸은 할아버지가 다쳤다는 말에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했다. 점심을 일찍 먹고 우리 가족은 연암도서관으로 갔고, 아들은 책을 읽고 빌리고, 딸은 나와 밖으로 나가서 줄넘기를 했다. 딸이 머랭을 먹으며 잠시 쉬는 사이 나는 아빠의 솜씨를 자랑해보려고 2단 뛰기도 해 봤는 데, 2단 뛰기는 세 개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허리가 아파왔다. 최근 허리가 불편한 감이 계속 있었는데, 어제 운전을 많이 하고 나니 허리가 더 안 좋다. 올란도의 시트도 문제다. 니로의 시트는 허리 아래를 잘 받쳐줘서 운전이 길어져도 피로가 적은데, 올란도의 시트는 몸을 둥글게 말아버리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도서관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고 집으로 와서 나는 부산으로 향했다.

1시간 40분 정도 걸려 병원에 도착. 아빠는 볼 수 없지만, 아빠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리고 환자들 가운데, 그리고 아빠와 있으며 몸도 마음도 힘든 엄마의 마음을 좀 풀어주고 싶었다. 그냥 엄마 이야기를 듣고, 엄마랑 밥 먹고 조금 걷고 싶었다. 세일 병원 근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 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늦은 시간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소문난 집인가 싶어 오늘 들어가 봤다. 엄마는 볶음밥, 나는 삼선볶음밥. 엄마는 해산물이 싫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사고를 이야기하고, 또 외할머니의 위중한 상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다른 이야기도 했다. 엄마는 일요일인 내일은 외할머니에게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빠가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밥을 먹고 음식점을 나왔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좀 걷자'라고 했다. 엄마는 평소에서 많이 걷는 사람이다. 운동을 하려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걷는 사람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고 있을 사람이다. 산악회 회원들에게 먹이려고 김치도 김밥도 준비하는 열혈 회원이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엄마 손을 잡고 병원 주변 지역을 걸었다. 그다지 춥지 않았고, 걸으니 기분도 나아졌다. 아빠, 엄마 모두 이가 건강하다는 이야기, 이제 버스 타고 병원까지 오려면 어디서 내려야 할지 정확하게 알겠다는 이야기. 세일병원에서 그렇게 부산역 방향으로 걷다 보니 정발장군 동상이 나왔다. 그렇게 엄마와 40분 정도 걸은 것 같다. 걷는 사이 운전하느라 지친 내 몸도 나아지고, 엄마의 손도 더 따뜻해졌다. 다시 병원으로 거의 다 돌아와서는 편의점에 들러 아빠가 먹을 간식을 좀 샀다. 아빠는 껌이 씹고 싶다고 했다.

병원 앞으로 와서 엄마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엄마도 연신 내 등을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참으로 엄마에게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구나. 내리사랑이라는 클리셰는 공감능력 떨어지는 자식들의 뻔한 변명이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그중 한 명이다. 효자는 못되어도 받은 은혜는 갚는 자식이 되어야 하는데, 엄마도 아빠도 볼 면목이 없다. 그래도 엄마를 안아주고 먼저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빠와 영상 통화를 했다. 아빠의 얼굴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강한 사람이고,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다. 아빠에게 미안한 게 많지만, 이런 사건이 터진 틈에 미안해하고 싶지는 않다. 잘 견뎌주고 씩씩한 아빠에게 감사할 뿐이다.

진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어두운 시각에 운전을 시작해서 어두운 시각에 집으로 오느라, 시간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서 더 금방 같았다. 세상 모든 기운을 아빠가 회복하는 데 쏟아 넣고 싶다. 기도해야지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