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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얼마나 미안해 해야 하나요?

내 옷장은 파타고니아 옷으로 만 가득 차 있어서, 가끔 학교 라는 맥락에 어울리는 차림새가 아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아주 가끔은 있다. 출근복을 만들어서 입고 다니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다. 메타의 주커버그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실리콘 벨리에 살지 않는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진주는 더 그렇다. 더울 땐 확실히 덥고, 추울 땐 확실히 춥다. 아침에는 겨울 같다가 점심 때는 여름 같기도 한 곳에서 한 가지 옷을 일년 내내 입기란 불가능 하다. 모노톤으로 옷을 준비해서 입는 방법도 물론 있다. 회색이나 검정, 긴팔과 반팔을 섞어 입으면 가능하겠다. 흠. 그건 좀 더 나중에 시도해보기로 하자 일단.

아무튼, 오늘은 옷을 둘러 보러 갔다. 그리고 이것저것 입어 보며 사진을 찍어댔다. 왜?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배고플 때 쇼핑하면 좋지 않은데, 식욕을 밥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소비로 채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옷가게를 둘러 본 것은 11시 30분이었고, 나는 배가 고팠다. 그래서 실컷 입어만 보고 사진을 찍어서 집으로 왔다. 아내에게 보여주고, 어떤가 의견을 들으며 좀 calm down 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 옷사러 가서

아마도 내 손이 카메라 일부를 가린 듯.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떳떳하거나 자연스럽지도 않아서 사진찍는 자세가 어색하다.

집으로 와서 아내에게 내가 본 옷들을 보여주고 허락(내 용돈으로 사는데도 아내의 허락을 얻는게 마음이 편하다)을 구한다. 아내는 왜 안 사왔냐며, 그냥 마음에 드는 것은 사오고, 집에서 입어보고 아니면 반품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집을 나섰다. 물론, 좀 쉬다가.

올리브색 면바지를 하나 샀다. 그리고 바지 밑단을 줄여다라고 맡겼다. 이제는 바지가 발목을 넘어가면 기분이 이상하다. 거의 매일 신는 나이키 에어포스에 딱 걸리는 길이가 좋다. 그렇게 바지 밑단 수선을 맡겼는데, 30분 후에 찾아오라고 했다. 해야 할 전화를 하며 30분을 보내고 돌아왔다.

수선이 안 되어 있었다..

10분을 더 기다렸다. 그리고 받아서 가방에 넣고 나왔다. 그런데, 받을 때 잠시 밑단을 봤을 때, 좀 지저분하게 작업이 된 것 같았다. 가게를 나가서 바지를 꺼내봤다. 그런데 실이 아래 사진과 같은 모양이다. 실이 꼬였거나 잘못 엉긴 상태다.

바지 밑단 박음질

흠, 요즘에는 이런 스타일이 유행인가?
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스타일이 아니다.

다시 가게로 들어가 사람을 불러, 이 모양새를 보여줬더니,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해드릴께요.
라며 바지를 들고 갔다.

another 10 minutes later.

또 다시 10분 후, 이번에는 오른쪽 바느질은 깔끔한데, 왼쪽에는 박음질이 안 된 부분이 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무래도 재봉틀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바지로 다시 밑단 줄여 드릴께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또 10분. 수선을 맡긴 지 1시간 만에 제대로 수선된 바지를 받았다.
*고객님, 너무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직원은 여러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표정을 보니 정말 미안한 것 같았다. 울 것 같기도 하고, 몸은 움츠러 들어서 작은 몸이 더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웃을 수는 없고, 화가 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라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오면서, 밑단 수선을 잘못해서 손님을 30분 더 기다리게 한 건 얼마나 미안해 해야 하는 일일까 생각했다. 나는 직원이 너무 미안해 하는 게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이 미안해 하는 것 같이 보였어도 내 반응이 같았을 지 모르겠다. 100정도 미안해 하면 될 일에 대해서, 직원이 150정도 미안해 하면, 내 기분은 50만큼 누그러 들까? 100정도 미안해 하면 될 일에 대해서, 직원이 딱 100정도만 미안해 하면, 내 기분은 좀 나빠질까? 100정도 미안해 하면 될 일에 대해, 직원이 50정도 미안해 하면, 나는 아마도 많이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을까? 그리고 100정도 미안해 하면 될 일 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다.

따라서 직원 입장에서 보기에 자신이 100정도 잘못했다면, 150, 200정도 미안함을 나타내는 게 안전한 전략이 된다. 지나치게 미안해 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는 사람은 적을 테니까.

나는 멋대로, 너무 미안해 하는 그 분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읍소해도, 성질 내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마음으로 미안해하는 것보다 더 많이 미안함을 드러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소비자와 일개 판매자(판매상과 구분해 보자. 자기 가게를 갖고 있는 주인이 아니라 더 약자인 판매자를 생각해 보자.)의 만남은 거래가 일어나는 순간, 물건과 돈이 교환되는 순간에만 발생한다. 물론 옷을 권하는 동안도 그런 관계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 관계는 지속적인 것이 아니지만, 짧은 순간에도 위계가 발생한다. 이것은 왜 그럴까? 필요한 것을 사고, 물건을 팔며 돈을 받는거라면, 여기에 왜 위계가 발생해야 할까? 그 근원은 생각하지 못해서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질서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거나, 세상의 질서에 균열을 느껴서 생각하게 되는 불편함.

100을 잘못하면, 우리는 얼마만큼 미안해 해야 할까?

덧, 버려진 바지는 너무 아깝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