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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밖에 나가서 좀 뛰었다

개학을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간식이 당기고, 커피가 당기고, 귀가 윙윙거리고 목이 아프다. 어제는 개학이었고, 오랜만에 크게 소리를 내려니 목이 놀랐나 보다. 목이 잠기고, 밤에는 목이 좀 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더 안 좋아지면 곤란하고, 이런 시기에 감기에 걸리면, 코로나로 오해받거나, 코로나와 구분하기 힘들거나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새벽커피에도 가지 않고 잠을 늦게까지 잤다. 자고 나니 많이 나아졌다. 목이 부은 것은 아니었다.

생기부 마무리 때문에, 더 나쁜 자세로(일에 집중하면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더 오랜 시간 컴퓨터를 보다 보니 어제는 목 뒤부터 견갑골까지 불편해졌다. 예전에 거북목 왔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다. 병원에 가면 그렇게 진단 받는 것은 아닐까. 집에 가만히 있으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서 점심 먹기 전 좀 뛰러 나갔다. 5분 이상 뛰어본 게 얼마만일까? 1년도 더 된 것 같다. 무리하지 않고, 호흡이 너무 가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뛰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뛴다기 보다는 빠르게 걷는 것 같은 속도에 가까웠지만, 뛰었다.


스트라바 기록


뛰고 걷기를 반복했던 걸 생각하면 킬로당 7분 30분초는 되려 빠르다고 생각된다. 집으로 올 때는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더 힘이 들었다. 무리하게 빨리 뛰면 오래 뛰지 못하고,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기 십상이다. 최대한 천천히 뛰어서 그래도 20분 이상 뛰고 걸을 수 있었다. 매일 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능할까?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몸을 움직여 준다면, 조깅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지 모르는데, 목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해모로에서 서부청사로 조성된 산책길은 부흥교 아래를 지나간다. 얼마전까지 보이지 않던 그래피티가 보인다. 사진을 찍어와서 보니 아직 완성된 게 아닌 것 같다. 뭐라고 쓴 것일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욕만 아니라면, 완성되면 좋겠는데, 다 쓴 락카는 잘 가지고 갔겠지? 뭔가 좋은 내용을 멋지게 표현해주면 좋겠다.



덕오마을로 향하는 자전거길에 있는 표지


너무 힘든데, 그냥 멈출 수는 없고, 자전거길을 일부 달리다가 왔다. 걷기도 싫고 뛰기도 싫고, 오늘은 목이 불편하니 이렇게 앉아서 일기쓰기도 싫은 날이다. 그래도 내일도 걸어야 하고 뛰어야지.

나이를 먹는데도 참으로 체감하기 어렵다. 이전에 혹사하던 버릇대로 내 몸을 대했다가는 당장 내일 크게 다치거나 아플 수가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게 나이먹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마음만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생각이 자라더라도, 마음은 아직 어리던 그때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숨이 차지 않았던 같은데 하고 씁쓸해 봐야 소용이 없다. 태어나고 죽는 것들은 모두 늘 변할 수 밖에 없고, 인간이란 젊은이였던 때가 꽃이고 이후로는 천천히 시들어 간다. 시든다는 게 끝은 아니지만, 굳은 각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면 겨울에는 특히 남강에서 쉬고 있는 철새들을 볼 수 있다. 저 너머 와룡지구가 보이는데, 사진에서처럼 고니 같은 새들이 보인다. 그 옆의 오리와 비교하면 정말 덩치가 큰다. 그저 흰색이라 우아하고 더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오랜 경험에 의한 유전일까. 동물의 새끼들은 모두 귀엽고, 이는 부모가 사랑을 쏟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자극이 된다고 한다. 인간의 아기들이 모두 귀엽고 예뻐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이 된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후광효과’의 덕을 누리지 않는가.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라는 진술부터, 이미 ‘외모가 중요하긴 한데..’ 라고 말하고 있다. 저기 저렇게 노니는 새들을 보자마자 나는 더 이쁘네 마네를 생각하게 되고, 뜬금없이 세상의 불평등, 어이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참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니 땀으로 몸이 젖어 있다. 엉망진창인 머리를 가리고, 분명히 귀가 시릴 것 같아서 털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모자 안에서 머리도 잔뜩 땀에 절어 있다. 내일 달리면 오늘보다 나으려나.

초중학생 때까지 나는 내가 집돌이 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친구들이 와서 부르지 않으면 그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머리가 지끈 거린다. 왜 그럴까. 나가서 움직이는 게 더 좋아진 때는 언제일까.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 아들과 딸이 다투니까, 그런 다투는 시간을 줄이려고 나가는 걸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뛰고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혼자만의 시간, 머릿 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튼 좋아하는 것을 나의 다른 역할과의 충돌없이 해내는 재주, 그걸 키워 나가야 한다.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