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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언제까지 흰머리를 뽑게 될까?

나

양치질을 하다가 화장실 불빛에 번쩍. 흰머리는 은색머리인냥 반짝. 왼손가락으로 머리에 고랑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반짝이는 머리를 찾아본다. 흰머리는 휜머리다. 파마를 한 머리칼과 또 다르게 애매하게 휘어있어 제법 눈에 잘 뛴다. 흰머리를 뽑으려고 눈을 부릅 뜬다. 내 눈이 닿는 곳에 있는 흰머리만 내게 있는 흰머리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흰머리는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생각되겠구나.

손으로 흰머리 한 올을 색출하자 했는데, 잘 안된다. 핀셋을 가지고 와서 하나만 집어 본다. 툭 뽑아보는 데, 검은 머리 한 올도 걸려들었다. 아직은 검은머리 아까운 정도는 아니라 쿨하게 검은 머리 한 올과 함께 흰머리는 희생된다. 그렇게 네 가닥을 뽑아냈다.

흰머리는 언제까지 뽑게 될까? 새치염색할 때까지? 하루에 한 10올? 매일 10올씩 뽑다가는 탈모가 머지 않다. 점진적 혁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흰머리를 뽑다가 결국 뽑지 않는 시점을 맞이하게 되겠지. 나는 새치염색은 하지 않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좋다. 새치염색이 아니라, 이 참에 내가 원하던 갈색 머리는 가능하지 않을까. 염색에 파마에, 이거 머리칼을 너무 괴롭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색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흰머리를 인정하게 되면, 그제사 흰머리는 뽑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려나. 흰머리와 비슷한 것이 내 인생에 또 있지 않을까? 버리고 싶은 습관이라거나, 잊고 싶은 기억이라거나. 몇 개는 버리고, 몇 개는 멀쩡한 것과 같이 뽑아 버리고, 몇 개는 보지 못해 넘어가고. 습관에 염색을 하고, 기억에 염색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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