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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꽃보다 잎 : 산책길

벚꽃나무 잎

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을 하는데, 이미 벚꽃은 온데간데 없다. 그래도 푸른 잎들이 붙어서 팔랑팔랑 손을 흘들어 댄다.

사람들은 왜 꽃을 좋아할까. 벚꽃나무는 벚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무는 꽃이 기대는 기둥 같은 존재감이다. 꽃은 잠시 피고, 그 모양이 이쁘다. 이 이쁘다라는 묘사는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관이니 객관에 가깝다 할 수 있겠다. 꽃의 색은 잎과는 다르다. 잎은 그 다양함이라고 해봐야 초록 주변이다. 꽃은 그렇지 않다. 식물들의 잎이란 색이 그저 거기서 거기인데 비해, 꽃들은 꽃마다 색이 다르다. 사라들은 노란 꽃, 자주꽃, 보라꽃, 분홍꽃, 색깔을 수집하듯 철을 달리하며 꽃을 즐긴다.

하지만 꽃은 빨리 지고, 늘 나무는 나무인채로, 상당히 오랜 시간 잎을 단채로 서 있다. 잎으로 영양을 얻고, 나무는 길이로 부피로 자란다. 꽃이 떨어지고 나도 나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덕분이다.

우리는 벚꽃나무 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잎을 보고 알 수 있다. 무엇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주는 것은 정의가 하는 일이다.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쩌면 유일하게 정확하게 외우고 있는 정의이다. 원의 정의를 기억하면, 우리는 보지 않고도 원인 것과 원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나뭇잎을 보면, 그 나무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 잎의 역할은 이러하다. 나무를 지탱하며, 나무를 정의한다.

나는 잎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꽃은 예쁘나, 예쁘다고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본질에 가까우냐를 생각한다. 꽃이 나무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은 인정한다. 열매를 맺고 씨앗을 뿌리면 나무는 그 자리에서 죽더라도 다시 새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그루의 나무만 보자면 잎을 좋아하기로 결심한다.

꽃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람의 어떤 부분은 꽃 같을 때도 있다. 이쁘다고 누군가를 아끼면 되겠나. 모두 이쁘려고 하고, 모두 이쁨을 뽐내는 데만 신경을 써서야 되겠나.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잎이 필요하다. 이쁜 데가 없어도 꽃을 피우지 못해도, 잎은 그 자리에 있다.

내가 밝은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잎과 잎들을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가진 눈이 밝지 못하다면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주변 도처에 나무다 사람이다. 나무를 알아보려고 해도, 사람을 알아보려고 해도, 잎을 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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