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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쌈채소 먹기 같은 ‘소설 읽기’

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아직도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지만, 소설은 손이 가지 않는다. 서점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인문, 사회, 과학, 자기계발서까지는 아주 차근차근 살펴보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왜 일까? 지은이의 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가는 ‘내 소설은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이러이러한 주제를 전하고자 한다.’ 라고 밝히지 않는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내용과 주제를 밝혀내고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는 내용과 주제라는 것이 실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소설이 아닌 책의 경우, 저자의 말을 듣고, 책의 목차를 꼼꼼이 보고, 책 중간 쯤을 펴서 읽어보면 된다.

실패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소설을 혼자서 선택하게 되면, 실패하기 쉽다. 무슨 책이든 고르고 나서 읽다보니 기대와는 다를 수가 있다. 그러면 그만 읽으면 그만이다. 책을 펼치고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종류의 책이든 골라두고도 안 읽게 될 가능성은 있지만, 소설은 그 가능성이 좀 더 높다 하겠다.

혼자 서점으로 가서, 소설을 턱 골라서 읽으면, 음, 역시 잘 골랐어. 라고 하기는 어렵다. 소설을 고를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전부터 시작하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정말 재미없을 수도 있다.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들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고, 외국작품이라면 지리적으로도 너무 떨어져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나의 현재를 xy축에 나타내고, (당연히 나를 원점에 두겠지) x를 시간의 축, y를 공간의 축으로 본다면, 원점에서 멀어질수록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을 게 분명하다. 모르는 게 많을수록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게 마련이고, 이해는 얕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읽게 되면서 역사적 사실이나 어떤 공간에 대해서 배우게 될 수도 있다. 마치 책 도둑을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 겪던 일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모든 책읽기는 세상에 대한 정교화의 과정이니, 하나의 주제 혹은 소재에 대한 책 몇 권으로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월등하게 깊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럼 다시 책을 고르는 데 실패하기 싫다가 소설을 꺼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가 있겠다.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이 있거나, 내가 읽어봤고 좋아하는 작가라면 읽을 힘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소설을 손에 쥐기가 어렵다. 최근 나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작가는 박완서 선생님이다. 리디셀렉트(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정액제 요금)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이 대거 나와서 정주행 중이다. 그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끔 고전, 가끔 트위터에서의 추천, 책 관련 유튜브의 추천으로 고른다. 직접 고르는 과정이 적고, 좋아하는 작가도 없다보니 소설은 정말 띄엄띄엄 읽게 된다.

좋아하는 고기만 먹다가 잠시 소설로 빠진다. 고기같은 실용서, 주지주의적인 책 사이에 소설을 조금 곁들인다.

숲과 별이 만날 때

숲과 별이 만날 때도 리디셀렉트에 있어서 골랐다. 매달 요금을 내는 만큼 리디북스에서도 한 달에 한 권은 읽자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일단 제목은 마음에 들었다. 영어 원제인 Where the Forest Meets the Stars 을 그대로 옮기자면 숲이 별을 만나는 곳정도라고 해야 하는데, 한글 제목이랑은 거리감이 약간 있구나.

대략의 줄거리

자기는 외계행성에서 왔으며, 자기가 바라는 일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는 쿼크(라는 힘)을 가지고 있고, 다섯 개의 기적(행복한 일)을 보게 되면 자기가 떠나온 행성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여자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얼사. 새들의 둥지를 연구하러 온 그녀, 어머니를 모시고 농장을 돌보며 계란을 팔러 나오는 그. 세 사람은 만나게 되고, 마치 가족과 비슷한 관계로 빠져든다. 누군가는 결핍을, 누군가는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주변 인물도 모두 마찬가지다. 세 사람의 모험은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 그 자체에 있고, 얼사는 외계행성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외계행성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잠시 sf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섣불리 결론 내지 않고 기다리도록 한다. 얼사가 어떻게 외계행성을 떠나와 지구로 왔느냐? 가 해명되는 부분은 절정이나 결말이 될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 읽을 수 있는 책

300쪽의 소설은 50페이지까지 읽기가 힘들다. 모르는 것들 투성이고, 이름들이 쏟아진다. 낯선 나라의 이름들은 구분조차 쉽지 않다. 50페이지까지 힘들면 100페이지까지 읽어나가면 된다. 이 책은 그래도 인물이 ㅇ아 편이다. 읽기가 힘들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출판사가 이 저자를 높이 평가 했는 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과학자라는 부분은 마음에 든다. 마션의 저자처럼 자기의 전공분야 이야기를 쏟아내지는 않았지만, 새들의 이야기는 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다 읽고 났을 때,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진행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맥이 빠지지는 않았다. 좀 더 재미있으려면 어때야 했을까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건방진 독자임에 틀림없다. 하하. 이 저자의 작품을 더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소설 한 권을 읽기 목록에 적립. 결국 많은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좋아하는 작가가 생길리 없다. 많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좋은 작품을 선택하고 기다릴 수 있을리가 없다.

덧, 지금 리디북스에서 읽고 있는 또 다른 소설은 박완서 작가님의 '도시의 흉년'
당연히, 이 책 숲과 별이 만날 때 보다 훨씬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