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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흉년 중 -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읽고

리디 셀렉트에서 박완서 작가님 작품만 쭉 읽어도 본 전은 되겠다 싶다 생각하며..

10년 넘게 부모로 살고 있고, 40년 넘게 자식으로 살고 있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늘 변하고 변하여 충분히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늘 다시 느낀다. 박완서 작가님의 도시의 흉년을 느끼면서, 나는 작중 화자인 수연이를 통해서 갖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40년 넘게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를 대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부모님의 모습에도 열심히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내 부모님에게 자식이 나뿐인 것은 아니라 다행이다. 엄마는 딸들과는 거의 매일 통화하는 것 같고, 아빠도 나보다는 누나나 동생에게 더 자주 전화를 한다. 내가 그래도 가장 가까이 있으니 이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도와드리지만, 아빠가 다치기 이전에는 내 도움이 필요한 일로 나를 부르신 적은 없다. 통화만 하면 조금 아픈 것 따위는 이야기를 안 하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식으로서 내 부모님을 관찰하면서, 이해하기 힘들거나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어릴 때라 부부로서의 부모님 사이를 제대로 관찰해 내지 못했고, 내가 결혼하면서는 따로 살게 되었으니 두 분을 관찰할 기회가 적었다. 두 분 중 특히나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여기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엄마의 어떤 행동이 싫다는 게 아니다.

아빠는 몸이 안 좋거나 마음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엄마에게 티를 내고, 엄마를 기분 상하게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가장 편한 사람에게, 가장 막대하는 경우랄까. 이번에 아빠가 다치고 병원에 갔을 때도, 엄마는 아빠랑 있으면서 좀 불편해했다. 그러면서도, 아빠 옆에 있어줄 사람은 엄마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가 서두르다가 실수해서 그런거 아니냐며 아빠 탓을 하며 속상해했다. 아빠 잘못이 전혀 없다는 걸 알고 나서, 아빠가 너무 심하게 다쳤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엄마는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불쌍해서 어떡해 라며 자기 살 떨어져 나간 듯 아파했다. 엄마와 아빠는 한 사람처럼 가깝다가도, 너무 붙어 있어 땀띠난 살처럼 못내 떨어지려고 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아빠와 엄마가 소리 지르며 싸우는 걸 나는 자는 척하며 들은 적이 제법 있다. 아빠는 술을 마셨거나, 술에 취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욕도 있었고, 이제 그만 살자, 나가 죽는다 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차라리 빨리 잠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거나, 꿈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결국 잠들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에는 부모님의 다툼은 많이 줄었고, 그래도 다툴 때 나는 보란 듯이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내가 부릴 수 있는 감정은 그것뿐이었다.

다툼의 원인은 가난과 쪼들림. 아빠는 늘 자상한 편이고 이해심 많은 편이었지만, 뭘 사달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열심히 일해도 쪼들려서 인심을 잃기 쉬운 때였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따위의 말은 안 믿은 지 오래고, 자본주의 속 노동자의 삶이란 개선되기 어렵다는 걸 나는 관찰해 왔다.

이제 따로 살게 되면서 부모님과 나는 성인 대 성인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그저 여전히 얻어먹고 사랑받는 아들이라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이제 나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대접한다. 나는 아직도 철이 없어,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고, 부모님은 그게 섭섭할 때마다 아마도 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다. 늘 전화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지금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간신히 챙기는 사람으로, 부모님이 그 지금, 현재에 없을 때도 많다. 지금 와서야 왜 부모님 집에서 더 먼 것으로 이사 왔을까 생각하지만, 그저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최선의 결정이었다.

소설 속 '수연'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어렵긴 하다. 애써 배우려 하거나, 공들여 생각하려 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분명 어렵다. 사람이 여러모로 철이 들려면, 여러모로 배움이 필요하다. 엄마, 아빠, 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