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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또 다른 글쓰기 책이 가리키는 그곳

제목 : 하버드대 까칠교수님의 글쓰기 수업
원제 : Unless It Moves the Human Heart: The Craft and Art of Writing
저자 : 로저 로젠블랫
돋을새김. 2011

2022.01.03 - [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 오랜만에 글쓰기 책 : 마흔의 글쓰기 (명로진)

명로진 작가님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온라인 서점에는 '품절'이라고 나오는데, 인기가 없어서 절판된 것이겠지. 40년 이상 글쓰기 강의를 하고 거기서 얻은 이야기를 써낸 책이다. 등장하는 학생들은 저자가 만난 학생들의 일부와 일부가 만난 조합물이 아닐까. 주로 학생들과 대화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 목적으로 충분하다.

제목이 마음에 안드는데, 저 영어 제목을 우리말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냥 글쓰기의 기술 따위로 쓰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마음을 움직여야만 글 정도라고 써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책 속에 다양한 영미문학 작가가 나오고, 그래서 영미문학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좀 더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그가 전하는 글쓰기의 왕도는 새로울 것은 없다. 계속 쓸 것, 무엇이든 쓸 것.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야 하니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몸 담고 있는 세상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쓸 것. 글을 쓴다는 것은 적확한 단어를 골라 쓰는 것으로, 괜찮은 단어와 적확한 단어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매일 버릇처럼, 습관처럼, 혹은 반드시 먹고 지나가야 하는 일처럼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 다른 곳에 썼다가 블로그에 옮기기도 하고, 오늘처럼 일찍 잠들고 싶은 날에는 블로그에 바로 쓰기도 한다. 신변잡기라고 할만한 글이라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고, 내 나름의 시각을 가지지 않을 때도 있다. 도저히 나에게 솔직해질 수가 없어서 실컷 겉돌다가 발행을 눌러 버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글쓰기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안 팔리고, 안 읽히더라도 계속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 글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법은 간단하다. 수영 선수가 되기는 어렵지만, 수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비교적 쉬운 것과 같다. 하지만, 나이 들어 수영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나이가 들었어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아니 좀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나이 들어서 수영을 잘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이 많은지, 글 잘 써보겠다고 글을 어푸어푸 써내는 사람이 많은지 모른다.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엊그제와 어제와 오늘 쓰는 나의 글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모두 나를 흘러서 나온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저 내가 좋아하거나 내가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는 것 이상이다. 자세를 잡고 잘 관찰하기만 한다면, 내가 쓰는 것은 모두 나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닐까. 물론 말한 대로 자세를 잡고 잘 관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하루 하나의 포스팅을 올리면서도, 학생들 생활기록부 기록을 위해 1500byte를 쓰는 일도 숨이 차다.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관찰이 너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속으로 내 머리를 때린다. 그리고 어찌 되겠지 싶은 마음이 되고, 한 숨 자고 나면 또 새로운 하루의 힘이 나서 나아질 거야 생각한다.

우주만큼 넓은 인터넷 공간을 떠 다니다 이 글에 닿은 사람에게 그러니까 여러분도 써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명로진 작가는 글쓰기는 자유다라고 말했는데, 내게는 아직 속박이다. 글을 써야 한다라는 생각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벽에 달린 줄을 당기며, 언젠가는 강해질 거야라고 혼자 읊조리고 있는 씨름 선수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당기지 않고는 힘을 기를 수가 없다. 나는 아마도 타고난 힘이 적은 것 같고, 그러니 힘을 쌓아야 한다. 남들 닿는 만큼 닿고 싶고, 남들 쓰는 만큼 잘 쓰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안다. 나는 남들처럼 될 수가 없다. 그 이라는 대상은 하나가 아니고, 고정된 게 아니고, 변화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고, 대상이 하나라도, 고정되어 있더라도, 변화하지 않더라도, 결국 내가 될 수 있는 건 또 다른 모습의 나일 것이라 그렇다.

There is no there there.

이 책 속의 제자들은 모두 교수의 바람대로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각자 가진 삶의 이야기가 다르지만, 시를 쓰겠다 수필을 쓰겠다 단편소설을 쓰겠다고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썼을까.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자기가 꿈꿨던 것보다 더 나은 작품을 썼을까? 모를 일이다. 소금 한 줌을 더해 바다를 더 짜게 만들겠다는 사람처럼 어처구니없이 써야겠다고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