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모임

먼북소리- 5월 모임 '축의 시대'

타츠루 2025. 5. 17. 22:33

책: 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
일시: 2025.5.16.(금)
장소: 도시달팽이(망경동)
참석자: 6명(훈, 수, 호, 민, 우, 시)

책을 반도 못 읽었어요.

책이 어렵긴 했나 보다. 어렵다는 건 무엇인가. 모르는 단어가 많거나, 논리의 전개를 따라가기가 어려울 때 어렵다. 책이 두껍기까지 하니 그 어려움은 배가 된다. 이 책은 650페이지 정도다. 나의 경우 10페이지 정도 읽는데도 20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나중에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내가 모르는 단어들(인명, 지명, 개념어 등)이 많이 나오면 보는 둥 마는 둥 괴로움은 참고 눈으로 훑고 지나갔다. 더 힘들 때는 소리 내어 읽고 지나갔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건, 반복해서 읽거나, 기억하거나, 여러 각도에서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모임을 앞두고 읽으면서는 모두 써먹을 수가 없는 방법이다.

이 책은 그리스로마, 중국, 인도,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시작은 희생제 혹은 제의에서 시작한다. 동물을 죽이고 신께 재물을 바치는 일. 어떤 일을 중요하게 만들려면 철저하게 그 일을 의식으로 만들면 된다고 했다. 나는 '의전'을 떠올렸다. 직책의 레벨에 따라 의전의 방법이 더 복잡해 진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드러내는 방법은 그 의례를 복잡하게 하면 된다. 동물을 죽이는 희생제에서부터 사람을 같이 묻는 순장까지 신과 대화하기 위해 혹은 신의 대리자 같은 사람의 죽음을 처리하기 위해 의례가 필요했다. 이는 일상적 인간 삶을 초월한 어떤 의미를 주지 않았을까. 그런 의례가 사라졌다는 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는 변화였다.

축의 시대라는 용어는 칼 야스퍼스가 '역사의 기원과 목적' 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에서 사용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절판되어 이제 구할 수가 없다. 온라인 서점에 보니 한 권 있던데, 10만원. 그 정도 돈이라면 영어원서를 사서 그냥 읽어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일단 원서를 장바구니에 넣어본다. 이제는 절판된 야스퍼스의 책 보다 이 책이 뛰어난 부분이 있어서 여전히 널리 읽히는 게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야스퍼스의 책 보다 더 재미있거나, 더 쉽거나, 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축의 시대의 특징은 자아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파악하면 이성은 나의 감정을 정당화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여 멍청한 짓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기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같이 읽었는데, 유발 하라리가 현재라는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체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축의 시대가 말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축의 시대는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치 진흙탕 연꽃처럼 현자들이 나타났다. 깨달은 자, 혹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람 혹은 구원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생각의 체계를 쌓은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의 시대는 그들의 시대와 다르지 않아서 우리도 그때 그 사람들처럼 자비를 향해 되돌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기술은 더욱 발전했고, 인간은 폭력 이외에도 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고, 환경에 더 많은 해악을 우리 인류는 끼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더 나은 인간을 꿈꾼 적이 있고 (축의 시대에서처럼) 이를 실천한 인간도 있었다. '깨달음'에 이르고, '자기'를 벗어나 모든 인류를 위해 봉헌한 사람이 있다. 성인이라 하기 어렵더라도 간디, 마틴루터킹, 마더 테레사, 하워드 진, 자기를 넘어선 가치를 위해 자기 이익과 관계없이 헌신한 사람들을 우리는 근세에도 목격했다. 이 책은 나에게 보편적 인류 가치를 실천하라고 설득한다. 종교는 애초에 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행동'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독교의 사랑은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실천'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실천'은 어쩌면 가능하다.

이 책을 다른 사람과 다시 읽는다면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의 메시지는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니 그것부터 읽어도 좋다. 도입은 책을 쓴 사람의 질문이 드러나는 부분이니 읽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위 네 개 지역 중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만 따로 읽어도 좋겠다. 각 장마다 네 지역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으니 네 지역 중 한 지역의 이야기만 읽게 되면 책의 두께가 1/4이 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중국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고등학교 수준의 배경 지식 때문인지 그래도 쉽게 느껴졌다. 두번째 읽는다면, 익숙한 것보다 생소한 걸 읽어도 좋겠다. 붓다에서 그 정점에 달하는 인도를 그렇게 읽으면 좋겠다. 우파니샤드는 이름만 들어봤고 베다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 다양한 개념들과 도무지 외워질 것 같지 않은 이름들이 나오니 두 번 읽어볼 만하다.

한 달에 모두 읽고 끝낼 수 있는 책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모임에 오신 분들 중 절반 이상이 책의 절반도 읽지 못하고 왔다. (그럼에도 와주셔서 감사하다.) 나도 이전에 모임 선정 책을 다 읽지 못한 적이 있는데, 모임이 끝나고 나면 더 힘을 내서 끝까지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끝까지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모르는 부분'이 제법 명확하게 드러난다. 내가 모르는 게 많다고 한탄하며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아는 것만 읽어서는 새로운 걸 알 수가 없다. 어려웠지만, 당연한 일이다. 어려우니 잘해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지난달의 한나 아렌트, 이번 달의 암스트롱. 모두 힘들어하셔서 다음 달 책은 SF 소설이다. '프로젝트 헤이메리'. 이건 어려울 리가 없다. 다음 달의 즐거운 이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