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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랜선으로 모인 새벽커피

외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잠옷으로 입던 티셔츠와 바지는 벗고 어엿한 복장으로 갈아입니다. 그래 봐야 다른 티셔츠에 그냥 긴바지이지만. 6시에 모임 시작이지만 알람은 5시 55분에 맞춰뒀다. 집에서 하는 모임이란 이렇게 사람을 느긋하게 한다. 알람보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세수도 한다. 머리는 새집을 짓지 않아 잠에서 깬 사람 치고는 제법 말쑥해 보인다. 잠에서 방금 깬 사람 치고는. 

한 달에 한번 진주의 이곳저곳으로, 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모여서 커피를 마시는 모임을 연지 한 1년은 된 것 같다. 겨울새벽 물이 끓는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 만큼 추운 때에도 모여서 커피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지난달에는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났는데, 이번 달에는 그게 어렵다. 진주와 인근 지역 확진자가 갑자기 늘었었고,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모임을 하지 않고 지나갈까 하다가 랜선 모임으로라도 하기로 했다. 

새벽 커피 모임 대화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한다. 세수를 마친 나는 ‘일어나셨나요?’ 메시지를 넣고, 6시가 되자 ‘그룹 화상채팅’을 시작한다. 몇몇 분은 갑작스러운 벨소리에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스마트폰 화면 안에 나를 포함한 5명의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각자 커피를 준비한다. 도달과 강프로님은 핸드드립, 인효샘은 핸드드립, 스타프레소, 경원씨는 목네 드립백과 유자차, 나는 모카포트로 한 잔, 드립백으로 한 잔. 



커피를 두고 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페이스북 그룹 화상 채팅은 처음인데, 동시에 두 사람이 말하면 대화를 알아듣기가 힘들다. 우리는 천천히 마이크를 주고 받듯이 한 사람의 질문이 끝나면 답을 하고, 답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대화를 이어간다. 

무슨 커피를 마시는지, 어디에서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요즘 왜 조금 한가한지, 또는 요즘 어떤 일로 바쁜지. 커피 모임이 끝나고 나면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사람만 마이크를 차지할 수 있으니, 대화가 마치 눈치게임하는 것 같다. 별 말없이 커피를 홀짝여도 좋다. 그리고 새벽에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만나니 왠지 더욱 스스럼없는 것 같아서 좋다.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화면을 캡쳐해서 추억으로 남긴다.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하면서 내 얼굴은 내 손으로 자꾸 가려 버리긴 했지만, 기록으로 남기는 거니 괘념치 않는다. 7시가 거의 다 되어 우리 아들이 일어나 화면 속에 등장했다. 모임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다음 달에는 얼굴 보며 뵙자 하는데, 벌써 다음 달이 기다려진다. 

새벽잠을 끊고 모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는 얼굴보며 만나요. 

코로나야,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