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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

경남도립미술관 전시 관람 : 이어진 세계, 의심하는 돌멩이의 노래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음악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게 없구나. 하지만 그림 감상은 좋다. 꼭 그림 감상이 아니어도 좋다. 미술관 관람은 마음은 차분하게 해준다.

오늘 나는 미술관에 가고 싶었고, 아들은 과학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밖에서 점심을 먹는 게 싫고, 딸은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먼저 과학관에 가는 것으로 계획을 정하고, 점심은 먹고 나서는 것으로 했다. 휴게소에 들르면 간식을 사주겠다며 딸은 설득해 냈고, 나는 과학관에 갔다가 반드시 미술관에 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창원과학관에서 나오니 시간이 3시 40분이다. 경남도립미술관은 1시간 단위로 관람객 예약을 인터넷으로 받고 있고(시간당 80명), 예약 안 된 인원만큼은 현장에서 관람 신청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예약 상황을 보니 여유가 있어서 예약하지 않고 가도 관람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랬다. 오늘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관람하는 동안 만난 사람은 40명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창원을 찾으니 마음이 새롭다. 출장 때문에 창원에 갔던 적은 있지만, 미술관 구경은 정말 오랜만이다. 진주에도 문화예술회관이 있긴 하지만, 작품을 전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겠는가. 문화예술회관 전시실은 다양한 전시 구성 자체가 힘들어 보였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경남도립미술관에 갈 수 있었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소개하는 팜플릿에서 밝히는 것처럼 동시대 현대미술이 그 주제다. 고전이라고 쉬운 게 아니지만, 현대 미술은 더 거리감이 있는데, 예전의 전시를 살펴봐도 굉장히 어렵다라고 생각되는 전시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나 교육활동도 활발해서 창원에 살 때는 자주 갔었다.


도립미술관 팜플렛
경남도립미술관 소개 팜플렛

1, 2층 전시관에는 이어진 세계들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있었다.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그림을 즐기는 방법이 있는데, 그저 색과 모양으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구경한다고 생각하고 들여다 보는 것이다. 뭐랄까, 분명 좋은 그림을 보고 나면, 아름다운 숲을 보고 난 것처럼 마음에 청량함이 생긴다. 늘 보던 색이나 늘 보던 모양에서 벗어나더라도, 나름의 균형과 주제를 가지고 있어서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설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작품을 흉내내 보는 딸의 예쁜 손



오늘은 딸 덕분에 전시 관람이 더 즐거웠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7살 딸은 내 옆에서 좋은 감상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딸에게 ‘이건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건 무슨 모양일까?’, ‘이건 저걸 닮은 것 같은데’, ‘이 작품 제목이 ...래.’, ‘제일 이쁘다고 생각하는 작품 하나 골라봐.’ 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해서, 1층 전시를 둘러보면서 딸은 모든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도 딸에게 사진 하나를 부탁.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 앞에선 나

알랭드 보통불안Status Anxiety라는 책에서 현대인이 가지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예술을 예로 들었다.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크게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공공 미술관의 확대가 당연히 필요하기는 하다), ‘실용적인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언제나 생산적인 인간이 되려하는 현대인에게 위안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책을 읽어봐야 겠다.)



경남도립미술관의 입장료는 어른의 경우 1000원, 청소년 및 군인(13세 이상)의 경우 700원, 어린이(7세 이상 13세 미만)의 경우 500원이다. 미취학 아동은 무료. 우리 네 가족이 2,500원을 내고 한 시간을 편안히 보냈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관찰이 필요하겠지만, 아는 만큼 이해한다고 해도 오늘은 즐겁게 많이 알아갈 수가 있었다. (진주에도 이런 미술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림은 시와 비슷한 점이 있다. 시인은 한정된 재료(단어)로 무한한 작품,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언어를 실험하고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림도 그렇다. 제한된 재료(다양다고는 하나 결국 일반인도 알거나 구할 수 있는)로 무한한 작품,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든 그렇지 않은 그림이든, 내 마음에 영향을 준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불편하게 하는대로, 편안하게 만들어 주면 또 그런대로. 더 자주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면 그때 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