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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Not with 독감 (독감 접종기)

2021.11.01 - [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 아들의 이가 깨어졌다

 

아들의 이가 깨어졌다

“아들 이가 깨져 나갔어.” 아들은 아주 장난꾸러기가 아닌데도, 이미 한번 팔에 실금이 가서 반깁스를 한 적이 있고, 캠핑장에서 뛰어 다니다가 돌에 박혀 턱 아래가 찢어져 꿰맨 적이 있다.

yagatino.tistory.com

 

온라인 수업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아이톡톡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학생들도 접속할 수 있었고, 교사들도 접속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의 온라인 수업인데, 익숙한 듯 학생들 몇 명을 깨우고, 자가진단을 독려하고, 잃어버린 비밀번호는 재설정해주며 상당한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학생들이 오지 않아서 저렴한 급식은 어렵다. 그래도 우리 학교에서는 조리종사자분들이 와서 점심을 준비해주셨다. 보통의 식사에 비해 단가는 조금 더 높지만, 그래도 역시 밥은 학교 밥이다. 아침에 일어나고서 밥맛이 별로 없는 나는 국이 있으면 훌훌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그것도 어렵다. 내가 일찍 일어나서 국을 끓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는 콘플레이크는 우유에 말아먹었고, 충전이 덜 된 배터리를 채우듯 나는 역시나 학교밥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배를 가득 채웠다.

오후에는 조퇴를 썼다. 우리 아이들 독감 주사도 맞히고 나도 주사를 맞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독감 주사 따위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주장에 설득되고 만다. "오빠가 안 걸려서 아이들한테 옮기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렇다. 그러면 안되지. 코로나 이전에는 보건소에서 저렴하게 맞았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보건소에서 독감 주사를 맞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내 돈 주고 맞아야 한다.

집으로 와서 세탁기를 돌리고(매일 네 사람이 쏟아내는 빨래가 제법 되는 데다가 나는 세탁기 돌리는 걸 좋아한다), 재활용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린다.

아들은 미술학원을 좀 일찍 마치고 왔다. 아들의 목소리는 전화기로 들을 때마다 너무나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하다. 이런 솜사탕 같은 목소리라니. 초등 4학년 아들, 아직은 내가 손을 잡아도 뿌리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차가운 아들의 손을 잡고 딸을 데리러 유치원으로 간다. 아들의 학교와 학원도, 딸의 유치원도, 병원도 모두 제법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 좋다.

딸의 유치원으로 가는 길, 요즘 찾고 있던 단풍나무가 거기에 있다. 아들과 딸이 다니는 유치원 학원에서 곧 무드등 만들기를 할거라는데, 그때 단풍나무잎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나뭇잎을 책 사이에 꽂아 말려서 준비하면 좋겠다는데, 그러려면 떨어진 낙엽이 아니라, 갓 떨어졌거나 붙어 있는 단풍을 구해야 한다. 다 떨어지기 전에 와서 책 사이에 넣어둬야지 하고 계속 걸어간다.

딸은 잽싸게 뛰어 나온다. 품에 쏙 안는데, 늘 이런 때에는 시간이 잠시 잠시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내 품에서 나갈 때가 있지만, 나는 허공이라도 좀 더 안고 있고 싶어 진다. 아들 손, 딸의 손을 모두 잡고 병원으로 간다. 원래 가려던 병원은 오늘 오후는 휴진이라 다른 병원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는 사이에 똑딱(병원 진료 예약 앱) 앱으로 우리 셋 모두 예약한다. 아들은 주사를 맞고 나면 영어학원에 가야 한다. 이럴 땐 동작이 빨라야 한다. 병원에 가면 문진표를 작성한다. 숫자 외우는 걸 싫어하는 나는 에버노트 앱을 열어 등본을 열고 아들, 딸의 문진표도 작성한다. '어른은 4만 원을 내야 합니다' 독감에 걸리면 내가 앓고 잃게 되는 게 4만 원 정도 될까? 아, 아이들에게 옮기면 안 되니, 독감을 예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독감도 전염이 되는가) 딸은 콧물도 난 적이 있다고 해서 진료도 본다. 심하지는 않지만 약을 처방받았다. 예방 접종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해서 우리는 순서대로 주사를 맞는다.

병원으로 가면서 누가 먼저 주사를 맞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딸은 오빠가, 오빠는 딸이 먼저 맞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그럼 아빠가 먼저 맞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순으로 아들, 딸. 딸은 내가 맞는 거, 오빠가 맞는 걸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무도 (물론 나도) 울지 않고 주사를 잘 맞았다. 딸의 약을 조제해서 근처 문구점으로 간다. 이미 이야기가 되었던 거래다. 주사 잘 맞고 나면 문구점에 가겠다.

뽑기 중인 딸

아들은 포켓몬 카드를 넣는 앨범 같은 것을 사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카드 세 팩을 골랐다. (3000원) 딸은 문구점에서는 아무 것도 고르지 못하고, 그 옆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갔다. 이미 아들은 포켓몬 카드를 들고 영어학원으로. 딸은 1000원 넣는 뽑기를 두 판이나 했다. 가위 바위 보 하는 놀잇감 하나, 몰랑이 하나. 딸을 다시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는 집으로.

유치원에 다시 안 보내고 그냥 집으로 데리고 올까 했지만, 어차피 오후 간식도 먹어야 하고 방과후 활동도 해야 하고, 하원 후에는 미술학원에도 가야 한다. 그러니 나는 그냥 집에 와서 집안일을.

퇴근을 한 2시 정도에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학교에서 근무하던 중에, 한 선생님이 저혈당으로 쓰러지셔서 119를 불렀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갑작스러운 건강상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연히 아프고 필연적으로 죽게 된다. 한 선생님이 말하신 게 너무나 적확한데, 그 우연히 아픈 게 가끔은 필연인 때도 있지 않나 싶다. '아, 너무 피곤한데'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쉴 수 있어야 하는데, 고개를 흔들며, 커피를 한 잔 들이키며 그 소리를 외면하는 게 다반사 아닐까. 목이 뻐근하고 목덜미가 굳어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주말에나 좀 쉬어볼까'라고 생각하지 않나. 담임을 대신할 또 다른 담임이란 없고, 내 학생은 내 새끼와 마찬가지다. 내 새끼에게 하는 것보다 가끔 더 넓은 아량으로 학생들을 대한다. 1년을 계약한 관계이지만, 평생을 약속하려는 것처럼 대한다. 내 수업을 대신할 사람은 있지만, 나 대신 진도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야자감독을 바꿀 수는 있지만, 뺄 수는 없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는 아프면 쉬어요 라는 메시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이제껏 그렇게 해오지 못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아프면 쉬는 문화라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회사원들은 계속 재택근무를 하기를 원한다는데, 재택근무로 업무가 유지되고 밥벌이가 계속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위드 코로나라고 외치면서 사실상 Overcome 코로나를 선언하는데, 과연 우리는 아프면 쉬는 문화를 만들어 냈을까. 거리 유지의 성공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성공했다. 국민의 협조와 노력으로 그게 가능했으나, 이제 빠르게 이전의 세계로 환원되고 있다. 노멀 - 뉴 노멀 - 노멀로의 진행은 힘들 거라고 했는데, 그 이전의 상태로 급속히 전환 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 일 없었던 척하면,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이 되는 것처럼.

위드 코로나라는 말 앞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 A nornam life with Corona 일까? 코로나와 함께하는 일상? 코로나만 걸리지 않으면 예전에 하던 대로 해도 된다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코로나를 겪으면 우리가 배운 것을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