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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강수지의 노래와 잊혀지기

강수지 youtube

나는 강수지 세대다. 밤에 자주 그렇듯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 오늘은 흩어진 나날들이다. 국민학교 3,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강수지 씨를 처음 티브이에서 본 게. 나는 노래 부르는 걸 아주 좋아했고,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였다. 동요도 가요도 가리지 않았고, 인기 있는 노래들은 모두 외웠다. 교과서 노래를 다 외우고, 창작동요대회 노래를 외우고, 가요톱텐 1위부터 10위 정도까지는 다 외우던 아이였다. 학급에서 장기자랑, 학원에서 장기자랑, 소풍 가서는 선생님들 앞에서 노래 부르던 아이였다.

강수지 씨가 '보랏빛 향기'로 나왔을 때는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맑은 봄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주 티브이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기세로 노래를 들었다. 기다리지 않고는 티브이를 볼 수 없었고, 가사를 외우려면 받아서 써야 했다. 국민학생이었으니 여자 노래라고 못 부르를 게 없었다. 그러니 강수지 세대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모두가 그렇고 그러는 게 당연하지만, 티비에서 봤던 사람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나이 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다. 나도 나이가 들고 거울 속에서 그걸 확인하기도 한다. 우주는 나이 듦에 사람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우리를 서로 모여 살 게 한 게 아닐까. 먼저 나이 들어가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런 모습에 익숙해진다. 익숙한 것들은 자주 옳은 것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이 듦도 그렇다.

잊히는 것도 그렇다. 나는 자꾸 같은 나이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고,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몇 해 뒤 찾아와 "선생님,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건 그 학생들이 너무 빨리 자라서, 내가 자라는 혹은 나이 드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학생들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렇다. 사람의 성장에도 속도가 있고, 급류를 타는 지점이 있다. 비행기를 타면 세상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다.

내가 SNS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나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한 개인을 클릭하는 머신으로 대하고 오로지 광고를 클릭하는 소모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분명 대단한 데도 대외적으로는 그것을 과소하여 발표한다는 점이 더 나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SNS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학생들에게서 잊혀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최신의 SNS를 모두 하고 있었으므로, 외형상 학생들과 나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계속 내 소식을 올렸으므로, 나의 소식은 그들에게는 라디오와 같은 단방향 전달이었을 것이다. 내 소식이 궁금하지 않은데도 내 소식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관계가 아니고 우리는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삶에서 결국 나는 천천히 사라져야 하는데, 원치 않는 내 잔재가 그들의 삶에 남는 것 같아서 벗어나야지 벗어나야지 생각했다.

학생들의 삶에서 교사가 주는 영향은 기억 속에서 교사를 쉽게 떠올리게 되는 그 적당한 시점까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더 좋은 가르침을 마음에 품으려면, 오래되어 희미한 기억은 사라지거나 가라앉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너무 궁금해한다면,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때는 다시 찾아 서로 보면 좋겠다.

강수지 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정리해두지 못한 앨범 속에서 사진이 쏟아지듯 여러 기억들이 혹은 추억들이 두서없이 나타난다. 이별 노래에 걸맞게 내 마음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별들도 떠올리며, 내 기억이 아닌 이별의 감정도 떠올리며 쏟아진 사진들을 주워 담는다. 잊힌 것들은 잊히도록 주고, 그렇게 잊힐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된다. 잊히는 게 있는 만큼, 새로 마음에 담게 되는 게 있거나, 잊히는 게 있는 만큼 깊이 새기게 되는 게 있다.